맛집

깊은 울림이 있는 맛, 담백한 백지의 맛 - 소순주의 한우마당 평양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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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냉면이 대중의 기호에 맞춘 가요라면, 한우마당의 평양냉면은 냉면의 클래식이다.”
시내에서 꽤 오랫동안 냉면 음식점을 운영해온 주인의 클래식이란 표현이 그대로 화살처럼 꽂혔다. 자신의 냉면에 대한 자부심도 있을 터인데 같은 업종의 음식을 그렇게 높여주는 모습에서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 주인의 말은 정통'평양냉면'의 맛을 그대로 살려냈다는 의미일 것이다.
평양냉면의 정통을 이어간다는 곳은 바로 용암북로 132번지에 자리 잡고 있는'소순주의 한우마당'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 만큼 자부심이 그대로 드러났다. 냉면 마니아를 자처하여 동행한 지인도'정통 평양냉면'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에 기대가 한껏 올랐다.





평양냉면은 본래 평북지방에선 그냥 '냉면'이라고 칭한다. 조선시대부터 육수(肉水)가 아닌 차가운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말아 한겨울에 먹었다. 겨울철 동치미 국물에 먹던 냉면이 여름철 육수 냉면으로 자연스럽게 바뀐 계기가 있었다. 1907년 도쿄대의 교수가 개발한 화학조미료 '아지노모토'가 평양냉면의 맛도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한양에 있던 평양식 냉면집은 값싸고 편하게 육수를 만들 수 있던'아지노모토'조미료에'전통(傳統)'을 버리고'실용(實用)'을 택했던 것이다. 화학조미료에 길들여진 식객들은 그때 맛본 평양냉면 맛이 오히려 정통이라고 여겼고, 냉면의 본고장인 평양에도 그 맛이 퍼졌다는 것이다.
시절을 거슬러 올라, 화학조미료가 점령하기 이전 평양냉면의 참맛은 어떤 것이었을까. 오늘 방문하는'소순주의 한우마당'에서 내는 평양냉면이 조미료 맛을 완전히 배제한 정통 평양냉면은 아닐까 자못 기대가 컸다.
가을바람이 서늘해지면서 냉면의 호시절은 슬며시 뜨끈한 국물이 있는 음식으로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평양냉면을 기치로 내건 이곳 소순주의 한우마당은 여전히 점심 무렵에도 손님으로 가득했다.





'선육후면(先肉後麵)'
벽면의 글귀가 슬쩍 고기에 대한 입맛을 다시게 한다. 고기를 먹고 나서 먹는 냉면으로 입가심한다는 뜻이다. 원래는'술 한 잔 하고 난 후 면 요리로 마무리한다.'는 의미의'선주후면(先酒後麵)'에서 유래된 말이리라.
평양냉면의 첫 인상은 푸짐하고도 담백했다. 마치 수묵화의 여백에서 삶의 깊은 여운이 느껴지듯, 화려한 색채가 빠진 평양냉면의 모습은 맛의 진수를 선보이겠다는 다부진 결기가 보인다고 할까. 커다란 한우 편육 세 점, 푸른 창(槍)처럼 도드라진 채 썬 오이와 투명한 배는 깊은 냉면의 맛으로 안내하겠다는 전령사의 모습이었다. 냉면을 먹기 전 나온 뜨거운 육수 국물은 온몸이 풀릴 정도로 구수했다. 뜨끈한 기운에 한우와 사골을 우려낸 향이 감돌았다.
"이 정도면 냉면 맛은 기대해도 좋아."
함께 온 지인은 뜨거운 육수 맛을 통해 이미 신뢰를 담은 눈빛으로 냉면을 휘휘 젓는다. 입안에 부서지는 냉면의 식감으로 보면 메밀의 함량이 분명 50% 이상 되는 것 같았다. 면이 흰색에 가깝다는 것은 메밀껍질을 온전히 벗겨낸 채 가루로 낸 메밀을 사용한 탓이리라. 깊은 국물맛과 담백한 메밀 면의 궁합이 은근했다. 부족한 심심함은 백김치가 조화롭게 메꿔줬다. 고명으로 얹어 내온 한우 편육은 차가웠지만, 씹을수록 고소했다.





'냉면은 겨울철 시식으로 으뜸이다. 그 중 서북의 것이 최고'
동국세시기에 기록된 평양냉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전 평양냉면은 꿩을 삶은 국물을 이용하였으나 지금은 꿩이 귀하여 쇠고기와 사골을 쓰고 있다. 추운 겨울, 뜨거운 온돌방에 앉아 몸을 녹여가며 이가 시린 찬 냉면을 먹는 것은 이냉치냉(以冷治冷)의 묘미가 있었을 것이다.
평양냉면 소순주 대표는 서울 을지로 우래옥과 서울 길동 한우촌에서 냉면장을 지냈다. 냉면에 대해 그 어느 곳보다 자부심이 강한 곳이다. 냉면을 먹고 나오면서 뒷맛이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을 즈음, 지인이 한마디 한다.
"다음에는 고기를 먼저 먹고 난 후, 냉면을 먹어 보면 어떠할까. 선육후면(先肉後麵)이라잖아·"


소순주의 한우마당 평양냉면 / 043)29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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