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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리다 - 문상욱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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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좋은 아침나절이다. 한 여름 빛은 내게 따갑고 덥기만 한 불필요한 대상이지만, 작가에게는 아주 요긴한 붓이며, 화두(話頭)기도 하다. 모충동에 있는 문상욱 흑백연구소는 한 건물 3층 전체가 작업실이며, 강의실 그리고 작은 전시공간이었다. 그때 문 앞에 놓인 소나무 사진 앞에 걸음을 멈췄다. 동이 틀 무렵 찍은 소나무 숲이었다. 어둠에서 빛으로 바뀌는 순간, 안개와 뒤섞인 빛의 소묘는 새로운 차원의 감성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문상욱 작가가 빚어낸 사진에는 동시에 그의 영혼이 투영되어 있는 듯 했다. 그는 낮게 말했다.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죠. 빛을 이해하고 장악해야 가능한 분야가 사진입니다.”
엔진 ‘E-피를’에서는 흑백사진의 대가 문상욱(61)작가를 만났다. 그는 충청북도 사진대전 초대작가며 국제사라예보 겨울축제 큐레이터, 한국흑백사진페스티벌 집행위원장, 충북예총회장을 지냈다. 개인전 5회, 국제미술제 초대전 9회, 그룹전 150여회를 열었다.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충북사진대전 대상, 충청북도 미술대전 추천작가상, 한국사진가협회 20걸상, 미국 ABI 공로상, 대한민국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흑백사진의 이해’와 ‘Zone system' 그리고 ’사진의 기초‘를 출판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사라예보 올림픽미술관과 사라예보겨울축제위원회, 쉐마미술관, 중국태양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문상욱 흑백사진연구실 대표로 있다.





수석에서 사진으로


“조부께서 일본유학을 마치고 시골에서 서당을 운영하셨습니다. 덕분에 한학자의 길을 걸으셨던 아버지는 내게 사람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길 바라셨어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문작가는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80년 초, 분재와 수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료 수집을 위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점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학원 내 교사들이 주축이 된 사진동호회에서 활동하면서 점점 사진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30년 넘게 문작가는 꾸준하게 흑백사진만을 추구해 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요? 흑백사진을 찍으면서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칼라사진도 좋아했어요. 하지만 사진을 현상할 때, 칼라사진은 온도가 38도 이상 올라가야 합니다. 값비싼 장비가 필요했어요. 그리고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들은 흑백사진이 잘 어울렸어요.”라며 “초창기에 흑백사진을 배우면서 어려운 점은 데이터 축적이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로 흑백사진을 찍었던 사람들은 관공서 공보실과 오래된 사진관 그리고 사진기자 정도였어요. 흑백사진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줄 스승이 없었어요. 그래서 흑백사진공부는 주로 책을 통해 독학했어요. 책에 나온 작품들을 비슷할 때까지 그대로 찍고 또 찍었어요. 훈련과 반복을 통하다보니 조금씩 흑백사진이 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중국속담에 ‘아무리 허술한 예술가도 만 권의 책과 만 리를 여행하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는 흑백사진이라는 하나의 우물을 30년 동안 끊임없이 파왔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과거로의 여행’



Q.작가님이 작품 소재를 찾기 위한 주제로 ‘스카이라인’ 과 ‘신화’에서 언급한 적이 있어요. 무엇인가요?
A.“스카이라인은 하늘과 만나는 땅의 경계선입니다. 과거에는 초가집과 같은 곡선이었다면, 도시화와 산업화가 발달되면서 건물의 모양이 뾰족한 직선으로 변형되었어요. 그런 것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건물과 건물사이에 풍경을 넣는 방식’의 사진이나 부드러운 곡선이 돋보이는 자연친화적 사진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신화는 우리나라의 건국신화가 아닌 창조신화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열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 옥화상제나 염라대왕 같은 창조신화를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지요. 주제가 신화라면, 소재는 주로 돌을 이용해서 작품을 만들었어요.”

Q.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소재가 주류인데요. 특별히 관심이 높은 이유가 있는지요?
A.근대 서구의 문명은 과학적 합리주의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해왔죠. 결국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능력이 정당화되어 인간과 자연을 대립시켰다. 하지만 동양의 문명은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자연관을 갖고 조화롭게 살았어요. 2011년 국제 사라예보 겨울축제에 출품한 사진전 ‘과거로의 여행’은 그런 의미의 회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날로그적 세상은 사람의 기척이 있다

Q.사진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기억은?
A.아마도 충북장애인 사진연구회를 만든 것이다. 사진을 통해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긍정적 시각으로 바뀌었고 오히려 희망을 보았어요. 지난 2004년 중증장애인(1~3급)을 대상으로 사진을 가르쳐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고, 시도했지요. 사회적응을 힘들어하던 이들에게 사진을 통해 자신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1년의 세월이 걸려 2004년 겨울, 첫 사진전시회를 열었습니다. 1년 동안 공들인 시간의 축적물을 세상에 내어놓자, 그들도 마음을 열고 새로운 희망을 품더군요. 살아가면서 커다란 보람 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했어요.

충북장애인사진연구회는 내년이면 벌써 10년이 된다. 지난 해, 장애인근로자문화축전에서는 무려 20명이 사진공모전을 휩쓸기도 했다. 일반인들과 함께 출품하는 사진공모전에서도 매년 20~30명씩 입선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휠체어에 삼각대를 얹어 사진을 찍었다. 전국공모전에서 10만원의 상금을 탄 한 장애우는 “평생 내 손으로 처음 돈을 벌어보았다.”라며 큰 절을 올리기도 했다.

사진은 보이지 않는 이면의 것을 보게 하는 예술이다. 뷰파인더 너머의 피사체를 읽어내는 힘은 통찰에서 비롯된다. 그의 작품을 살피다 묻고 싶었던 질문 하나가 생각났다.




Q.요즈음은 디지털카메라가 대세다. 아직도 필름 카메라를 고집하는 이유를 물었다.
A.디지털세상은 사람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사람의 정, 그리움 같은 것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지요. 아날로그적 세상은 사람의 기척 같은 것이 있어요. 사람의 숨결이 감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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