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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相生)은 그 안에 녹아드는 것 - 손부남 화백의 그림, ‘상생(相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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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중견 작가 손부남 화백의 작품 중 상생은 특별하다. 작가는 자연 속에서 인간, 동물, 식물이 더불어 공생 공존하는 모습을 해학적인 표현으로 단순화 했고, 자연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사물이 갖고 있는 고유의 성정과 느낌 그리고 질감을 살려내 유려한 선(線)과 색채가 어우러진 새로운 세상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그의 전시장에 어린 소녀들이 주르르 갤러리로 밀려든다. 마치 소녀들의 몸에서는 가을낙엽처럼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작은 노트를 들고, 연필로 무엇인가를 적어댄다. 그녀들의 노트를 슬쩍 곁눈질 해보니‘가고 싶은 세상’이라고 적었다. ‘가고 싶은 세상’이라니. 상생이란 제목 옆에 부제로 달아도 근사하다고 느껴진다. 하긴‘상생Ⅰ’에서 보여준 나무와 새 그리고 열매들이 한 몸이 되는 공간이다. 마치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판도라 행성과 많이 닮아있었다. 영화에서 주인공 제이크의 정신이 아바타로 옮겨가는 순간, 그는 불구의 한계와 인간의 한계를 한꺼번에 뛰어넘는 전혀 다른 존재로 변신했다. 아바타가 되어 신령한 세상으로 가는 방법은 단 하나. 링크머신에 드는 일이다. 오늘 손 화백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링크머신은 무심갤러리였고, 그 연결 코드는 바로 손부남 화백이다. 화백님! 저를 당신의 세상으로 부팅시켜주시길. 손부남 화백은 벽에 기대어 조용히 자신의 그림을 바라본다. 그의 사진을 찍으며 렌즈 안에 열린 긴 회랑(回廊) 끝에서 나는 다시 그를 만난다.


손부남 화백은“상생은 함께 살자는 것이지요. 진천에 있는 시골 작업실에서 요즈음 상추도 심고, 쪽파도 심어요. 우리가 아침 식사를 할 때, 아무 생각 없이 입에 들어가는 채소들 하나하나에도 수많은 인연이 섞여 있음을 새삼 알게 됩니다.”라며 “제가 쪽파를 심으며 물을 주고, 주변의 잡초를 뽑아내면서 쪽파의 생명과 동화됨을 온 몸으로 느끼거든요. 어쩌면 그것이 상생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속에는 윤회, 순환(循環)같은 자연의 흐름도 들어가 있지 않을까. 사람의 몸은 그저 하나의 통로로 존재하는 세상. 하여, 그의 그림을 살펴보면 사람의 머리에서 싹이 나고 줄기가 이어져 있다. 사람의 손에는 새들이 가지인양 앉아있고 손가락에서 마디마디에 열매가 맺혀있다. 평론가 야마게시 노부오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더욱 명징해진다.


“손부남의 작품 속 최초의 시도는 동굴그림이었을 것이다. 그것에 매혹되어 자연히 동굴화의 재현에 착수하게 되었고, 모방해서 그리는 행위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깨달은 것은 고도의 표현기술도, 질서정연하게 형성된 회화 이론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리스 미술이나 르네상스시대 미술의 화려한 표현기법을 단숨에 함몰시켜 버린 것이다. 표현에 대한 처절한 욕망과 충동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간신히 사람이라고 판단될 정도의 기호 같은 형상, 단세포 동물이나 아메바 같이 늘어나고 오므라드는 동물의 형상들 말이다. 선사세대 사람들의 환경, 즉 자연, 기원, 생활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환기 한 것이다. 거기에서 생명의 근원적인 모습을 보았고 강렬한 에너지를 느낀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던가.


그의 그림들은 그저 캔버스를 자연에 푹 담가 꺼낸 듯 자연을 닮아있다. 그림에 담긴 흙의 질감과 색감은 곧바로 고개를 쳐 들것처럼 생동감으로 넘쳤고, 그 안의 영혼은 구김이 없어 자유로웠다. 자유로운 영혼의 원천은 어디일까.

“늘 시골로 돌아가려고 부단히 애를 썼어요. 젊어서는 도심에서 사는 것이 정보와 생활의 필요에 의해서였다면, 이제는 내 그림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삶이 곧 그림이 되고, 그림이 삶이 되는 곳이 시골생활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내 손에 흙을 묻혀가며 농사도 짓고, 햇살도 마주하며 그림에 그 자연의 기운생동을 느낀 그대로 담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일까. 그의 말에는 문득 삶의 현기마저 흘러나온다. 사실 손부남 화백의 작품은 미술시장에서‘꽤 잘 팔리는 작품’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는 “전업 작가의 그림이 팔리지 않으면 작품 활동은 불가능합니다. 물과 물고기와의 관계죠. 그런 면에서 작가와 고객과도 서로 상생의 개념이군요.”라며 웃는 미소에 가을햇살이 묻어있다. “선생님 작품을 보니 부조(浮彫)같다는 느낌이 있어요. 앞으로 작품 속에 있는 동물과 사람, 새들이 튀어 나올 것만 같네요?” “글쎄요. 앞으로 조각도 해보고 싶어요. 아마도 지금까지 제 그림 속에 살던 모든 사물(사람, 동물, 나무 등)들이 입체적으로 나와 공간을 채우면 그것도 재미있지 않겠어요?”

손 화백의 진정한 꿈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작품이 나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미술평론가 야마게시 노부오씨의“머지않아 다가올 기술정보사회가 화려한 것처럼 인식되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인간의 존재에 있어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을 추구하는 사람이 손부남 화백이다. 그것은 당연히 시대요청에 부합되는 것이라 확신한다.”라는 말 속에서 그 답을 어렴풋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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