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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가 살아 있다. -천경희 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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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그 속성상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라면, 도예는 생활 속에 실제 그릇으로 쓰여 내 몸의 온기를 주고 받으므로 더 친밀한 대상이다. 차를 마실 때 사람의 입술이 먼저 닿는 것은 찻물이 아니라 그 찻물을 품고 있는 다기의 몸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사람의 몸을 접촉하는 그릇을 만드는 이의 손길은 그 그릇을 사용할 수많은 미지의 손길과 이미 그 흙의 기운으로 서로 통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찻사발에 물 몇 방울이 떨어져 구르는 순간 사발 안에 물자욱이 생긴다. 마치 리트머스 시험지가 물을 빨아들여 빠른 속도로 번지는 형국이다. 그릇 밖에서는 어떤 변화도 없다. 경북 문경에서 아직도 장작불을 때서 도자기를 굽는 전통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문경요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도자기가 살아 있다, 땀을 흘린다, ‘꽃이 핀다’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천경희 도예가는 우리나라 전통 찻사발을 현대에 재현해 문경 찻사발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고급 상품화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도천(陶泉) 천한봉(千漢鳳)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사기장의 딸이다. 1991년 문경요에서 아버지 도천 선생으로부터 도예를 전수받기 시작한 천 씨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1996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차지한 것을 비롯 2001년 제15회 충남산업디자인대전에서 특별상을, 2006년 국제다구디자인공모전에서 장려상, 제30회 현대미술대전 특별상, 2013 올해의 명다기품평대회 용상 등을 수상했다.



도천 선생 이수자로 지정

-2007년 아버지 도천 선생의 이수자로 지정받았다. 도예명장인 부친의 후광이 좋은 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있을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한테 도자기를 배웠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작품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하루하루 도자기 만드는 과정들을 배우기 바빴고, 작업이 끝나면 쓰러지듯 잠들기 일쑤였다. 작업이 조금씩 손에 익고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더 잘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만날 때 힘들었다. 특히, 대외적 행사에서 천경희라는 이름보다 언제나 천한봉의 딸로 불려지는 것이 불편했다. 그럴수록 존재감도 작아지고 자신감도 없어졌다. 혹시 아버지께 누가 되지 않을까 말도 아끼고 행동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깨가 무거웠다. 인격도 좋아야하고 기술도 뛰어나야 된다는 부담감이 항상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영원한 저의 스승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힘들어 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슬기롭게 즐기면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산이 높으면 그만큼 극복하기 힘들고, 큰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요즘은 욕심을 내기 보다는 우리 전통을 잘 지키고 그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며 살고 있다.”

-도천 천한봉 선생의 이수자가 됐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아버지께서는 2006년 경북무형문화재로 지정되셨고 2007년 제가 전수장학생으로 선정되면서 2012년 이수자가 되었다. 특별한 이유라기보다 늘 아버지와 같이 작업하면서 전통문화 계승에 대한 생각을 마음으로 습득하게 하신 아버지의 가르침이 이유라면 이유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보유자가 되기까지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해외에서의 높은 평가

-천 선생의 작품은 국내보다 일본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힘들지만 흙에서 불까지 전통방식을 고집하여 인위적이지 않은 형태와 자연스럽게 발색된 유약과의 조화를 보고, 우리나라의 장인정신에 매료되어 아버지의 작품을 선호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1991년 도예를 전수받은 천경희 작가는 최고 권위의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차지하는 등 다양한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천 작가가 추구하는 도예의 세상은 무엇인가?

“문경지역은 11~12세기부터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대략 천년에 가까운 도예의 역사를 가진 서민생활자기를 생산한 민요이다. 이러한 전통성을 유지하면서 현대생활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창작 작품을 만드는 일이다.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작품이 되도록 유약이나 제작기법등을 연구하여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고 싶다.”

-현재 문경요 대표로 취임했다. 포부가 있다면?

“2012년 건립된 도천 도자 미술관을 많은 도예가들 뿐만 아니라 도자기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소통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도예를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작품을 성형하기 전까지 준비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른 채 외형적인 아름다움이 예술적 표현인 양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본을 무시한 외형은 쉽게 싫증나는 작품이 되어버린다. 디자인도 물론 중요하지만 흙을 보는 안목을 기르고 좋은 유약을 만드는 실험을 꾸준히 한다면 개성 있고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드는 도예가가 될 것이다.”


도자 하나를 빚는 것은 한 세상을 빚는 것이고, 완성된 도자기는 수많은 이들의 손길 안에 놓인다. 차를 한 잔 마실 때마다 흙의 기운을 모아 미의 영성을 이룩한 도예가의 손길도 느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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