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숲이 주는 풍미, 그대로 맛으로 이어져-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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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산을 넘어 굽이굽이 한가한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근사한 찻집이 있었다. 바로 홍차 전문점인 ‘마중’이었다. 그곳은 연인들 혹은 몇몇 지인들끼리 자기만의 비밀한 공간처럼 은근한 멋과 낭만을 누리던 명소였다. 세월이 흘러, 찻집이 한정식으로 업종 변경되면서 이름도 ‘호정’으로 바뀌었다. 비록 이름이 바뀌었지만, 명성만은 그대로였다. 특히 이곳 ‘호정’은 2014년 충청북도 ‘맛있는 밥집’으로 이름 올려 의미를 더했다. 밥심으로 사는 우리들에게 잘 지은 밥 한 그릇은 열 반찬이 부럽지 않다. 요즈음은 그만큼 밥맛은 한식집의 명성과도 비례한다. 모양도 좋고 밥맛이 좋으면 나머지 반찬은 볼 것도 없다.
호정 황준규 대표는 “모든 요리는 제가 직접 만듭니다. 언제나 내 가족을 위한 밥상처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음식 맛의 절반은 좋은 식재료에서 시작됩니다.”라며 “맛있는 밥맛의 비결은 일주일에 한 번 도정한 쌀로 밥을 짓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정식은 ‘한식의 코스요리’

넓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마주한 음식점의 풍경은 고풍스러우면서도 품격이 흘렀다. ‘호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아직도 ‘salon de tea'란 철 간판이 지나간 추억을 되살려 준다. 홍차 전문점으로 명성을 날릴 때의 기억이 차향과 함께 되살아 날 즈음, 구수한 밥 짓은 냄새에 추억은 금방 묻혀버리고 허기진 배가 꼬르륵 거렸다. 역시 차보다는 밥이 우선이다. 밥으로 배를 채워야 낭만적인 차 맛도 살아날 모양이다.
아담한 돌계단을 몇 칸 오르자, 전통과 현대가 묘한 조화를 이룬 독특한 분위기가 이색적이었다. 벽면은 일식집의 분위기에 천장은 안도다다오의 건축양식을 도입했고, 장식장에는 중국의 도자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호정’은 엄격히 말하면 한식이라기보다, 한정식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한식은 한상차림을 일컫는다. 상을 차리는 이는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상에 올린다. 밥과 국이 중심에 자리하고, 나머지 반찬들과 밑반찬이라는 부르는 장, 지, 초가 자리한다. 여러 반찬이라 부를 요리들과 찌개와 국, 장아찌나 김치마저 한상에 놓는다. 무엇을, 어떤 순서로 먹을지는 상을 받는 이가 선택한다. 반면 한정식은 ‘코스요리’를 중심으로 운영한다. 한정식은 정식(定式)이다. 정해진 순서가 있는 ‘코스(course)요리’다. 주로 간단한 죽이나 샐러드의 애피타이저에 요리 몇 가지, 밥과 찌개, 몇 가지 찬을 내놓는 간단한 식사를 내고 마지막은 간단한 후식 정도로 구성한다. 서양의 코스처럼 한식을 재구성한 퓨전밥상이다. 한식은 푸짐한 상차림으로 만족도가 극대화 되지만, 한정식은 기다림과 기대의 미학이 숨어있다. 코스별로 나오는 까닭에 다음요리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11가지 진수성찬이 순서대로 나와

“어디에 손이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젓가락을 든 지인의 손놀림이 연신 바쁘다. 달콤한 호박죽과 새콤한 야채샐러드가 급한 속을 달래주자, 전병과 해파리냉채가 식사를 여유롭게 만들어 준다. 연이어 잡채와 탕평채, 전 그리고 떡꼬치와 미역국이 물밀듯 등장하자, 일행은 말없이 음식사냥에 골몰한다. 미처 다 먹기도 전에 안창구이와 가지탕수욕, 쭈꾸미 볶음과 훈제요리가 근사한 접시에 담겨 나오니, 벌써부터 포만감이 밀려온다.





“좋은 음식을 먹으며 푸른 숲을 보니, 저절로 소화가 되는 것 같아요.”
창밖으로 대숲이 일렁이고, 바람마저 산들산들 불어오니 절로 흥취가 솟아났다. 일행 중 한명이 “이럴 때, 찹쌀동동주 한잔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아.”라고 은근한 유혹을 한다. 호정의 ‘찹쌀 동동주’는 전통방식으로 우려낸 술이라 그런지 맛이 깊고, 깔끔했다. 마지막 코스인 갈비찜과 북어조림이 나오고 이어 호정의 자랑인 포슬포슬한 밥과 은근한 된장찌개로 마무리하니 하루가 그지없이 충만해진 느낌 그 자체였다. 좋은 음식이 주는 즐거움이란 이런 것일까.





식사를 마치고, 아래층에서 마시는 커피 맛도 특별하다. 과거 ‘마중’의 찻집 그대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진하면서도 커피 특유의 풍미는 그대로 살려내 허투루 대접하는 의례적인 커피와는 차원이 다르다. 무엇보다 엔틱 가구가 주는 멋스러움에 차를 곁들이니 만족도가 높았다.
“한정식의 매력은 코스가 돌 때마다 나오는 음식에 대한 기대도 한 몫 합니다. 음식간의 간격도 배려가 필요합니다. 종업원들은 그것을 지혜롭게 판단해서 다음 요리를 들입니다. 한식도 이제는 비주얼도 각별해야 합니다. 먹기 좋은 떡이 맛도 좋으니까요. 대신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사용해서 한식의 건강함과 맛은 분명하게 살려내야 하지요.”
황 대표의 말에는 한정식에 대한 자부심과 철학이 배어있었다.
‘어렵고 외롭고 아플 때 밥 한 번 먹자는 정 담긴 말은 빈 마음 채워주는 보약이더라. 밥 한 끼가 지니는 진정한 사랑은 다시, 일어서는 힘이더라.’
김재분의 시 <밥 한 끼의 힘>이 절로 생각나게 하는 음식점이다. ‘호정’은.


-호정 / 043)297-4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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