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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계와 영역을 넘나드는 퀼트의 세상-퀼트 이은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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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인가. 사진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경계를 무너뜨리는 자투리천의 변신에 빠져들었다. 다양한 작품들은 우리네 삶을 꼭 닮았다. 폭신폭신한 사랑처럼 알록달록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 같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 이불처럼 드리우며 덮는다. 천을 이용한 퀼트작품이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아름다움에 박음질의 입체감이 주는 시각적 효과까지 갖추었다.



퀼트는(Quilt)는 우리말로 조각보라고 보면 된다. ‘채워 넣은 물건’이란 의미다. 고대 이집트 무덤에서 ‘파라오의 조각’이라고 하는 망토에서 퀼트 기법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기원전 3400년의 역사를 추정한다. 본래는 쓰다 남은 자투리 천 조각들이 아까워 이를 재활용하기 시작한 것이지만 완성품의 가치는 본래의 조각 모음을 훨씬 능가한다. 퀼트가 이제는 재활용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예술의 분야로 거듭나고 있다. 퀼트 작가 이은숙을 만나보니, 그런 가능성의 문은 더욱 넓고 높다.
이은숙 퀼트 작가는 “남이 만든 디자인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닌, 나만의 문양이나 색상을 디자인하는 걸 목적한다.”라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하면서 좋은 색채나 문양의 영감을 얻기 위해 좋은 각종 그림전시회에서 그림을 보며 영감을 얻는다.”라고 말한다. 이 작가의 특별함은 머신퀼트 분야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모습이다.



인간의 생각은 어디까지일까.
이은숙 작가의 작품들을 보며 무한한 상상으로 세상을 지배해 나가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조능력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이은숙 작가의 퀼트작업장은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에 있다. 퀼트(quilt)의 어원은 청교도들에게서 유래가 시작되었다. 신대륙을 발견한 개척민들이 낯선 땅에서 추운 겨울을 나는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 시절 빈약한 자원으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건 조각이불을 깁는 거였다. 입고 난 옷의 헤어진 천 조각들을 잇고 이어 솜을 대고 세 겹 이상 기워서 만든 방한용 이불이 추위로부터 가족들을 지키는 큰 도구였다.
미국 초기의 퀼터들은 훌륭한 미술품은 본 적도 없고 만든 적도 없었을 것이고 더욱이 고도의 디자인 같은 것은 배울 생각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저 주위에 있던 천 조각들을 하나 둘 모아두었다 알뜰살뜰 가족들을 위한 필수품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들은 그렇게 바느질을 하면서 자신을 다스리며 마음의 즐거움과 평안을 느끼곤 했다.
우리나라의 누비옷이나 솜이불 역사도 이와 흡사하다. 우리 어머니들도 방한용 옷이 빈약하던 시절에 목화솜을 넣어 누비고 기워 옷을 만들어 입혔다. 퀼트라는 이름만 달랐을 뿐 이불을 만들고 더 작은 조각으론 밥상보자기를 만들어 왔다. 18세기 초반 이름 없는 개척 이민여성들이 만들기 시작한 아메리칸 퀼트가 여인네들의 손에서 손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며 미국적 개성이 더해지며 색채를 확실히 갖게 되었다. 그에 비해 우린 개념정리라든지 선조들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예술성을 겸비한 발전이 미미한 편이다.




젊은 여인네들이 명동거리에서 누비가방을 메고 다니기 시작한 80년대 초반, 퀼트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초기만 해도 멋스러움 보다는 가벼움과 기저귀 등 물건을 많이 집어넣을 수 있다는 실용성에서 인기였다. 그 후 퀼트문화는 우리의 일상생활용품 모든 것에 확대되면서 자유로운 표현기법으로 발전하게 된다. 예를 들면 사각화장지를 퀼트로 싸서 덮어 주변을 환하게 하고, 앙증스러운 꽃문양 퀼트받침 하나로 도자기의 가치를 돋보이게 한다.
현대로 오면서 퀼트가 미치는 예술적 가치는 대단해졌다. 천과 가죽을 잇대고 꿰매고 붙인다. 라는 뜻을 가진 아플리케라 바느질기법에 여성들은 놀랄만한 예술성을 가미하며 창조의 미를 살려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퀼트만이 가진 자연스럽고 소박한 창조성을 살린 생활용품에 머무르지 않고, 가구나 실내를 장식하는 훌륭한 포크아트기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퀼트작품의 실용범위는 무한하다. 한곳에 한정되어 바라만 보는 한계를 넘어 직물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각적 입체를 살려 벽에 장식용으로 걸린다. 이제 퀼트는 실용성을 넘어 예술성이라는 메리트를 가지고 급성장해 간다.
현대는 속도의 시대이다. 이은숙작가는 액세서리나 가방, 각종 생활용품을 핸드 퀼팅을 이용하여 만들던 것을,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여 머신퀼트로 작품을 만든다. 건축을 전공한 이작가가 핸드메이드로 많은 작품을 하면서 긴 시간을 바친 결과는, 그녀를 전국 몇 되지 않는 머신퀼트강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머신퀼트는 미싱을 구입해야만 해서 초기비용이 들긴 하지만 빨리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어 현대인들의 수요를 채우기엔 제격이다. 패치워크를 할 경우 손으로 일일이 바느질은 하는 것도 좋지만, 더 효율적으로 많은 작품을 하려함엔 좋은 미싱은 필수 요건이라고 이 작가는 강조한다.




미래지향적 머신퀼트의 매력


손으로 바느질을 하면 작품이 완성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지만, 머신퀼트 미싱은 단시간에 완성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느슨해지는 건 절대 아니다. 수단과 도구는 디지털화 되고 작가는 “쓰임새에 관해, 작품성에 관해 문양이나 색상 등 생각을 창조하여 소프트웨어에 입력한다.”며 “곡선을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머신퀼트 미싱의 용이성은 퀼트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라고 예찬한다.
작가는 미래지향적 퀼트예술을 지향한다. 재봉틀회사와 연결되어 퀼트에 관한 강의 교재를 만들기도 했고, 고가(高價)의 롱 암(long arm) 미싱을 구입해 폭이 넓은 이불이나 벽화 등 긴 작품의 곡선을 용이하게 박아 표현하는 도법을 전국처음으로 시도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수공의 미학과 기계의 빠르면서도 정확한 완전성이 만나 디지털예술을 창조하는 것이다. 재료의 질감이나 입체부분까지 소화하고, 헝겊질감의 독창성을 살려 노동의 시간을 당기는 기계가 주는 속력의 매력에 흠뻑 빠져본 행복만점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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