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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어린왕자를 꿈꾸는 예술가-금속공예가 김강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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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문이 열린다. 지도에도 없는 환상의 나라. 주렁주렁 매달린 수수께끼를 찾아 가자. 꿈의 나라 신비의 나라 이상한 나라로 어서가자 엘리스…” 동화 ‘이상한나라 엘리스’ 주제가 내용이다.



그런데 ‘이상한 나라’는 동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겉보기엔 커다랗게 지은 조립식 창고일 뿐인데,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환상에 빠지게 되는 그곳은 청주시 청원구 미평동에 있는 ‘강구리 금속공예작업장’이다. 입구에 도착하면 온몸의 털을 밀어 매끈한 피부의 커다란 맹인견이 나타나 길을 방해한다. 달려드는 녀석 때문에 발이 얼어붙는 이가 있는가? 구리 빛 피부에 긴 파마머리를 휙 젖히며 걷는 김강수 작가의 도움으로 들어가면 되니 염려마시라. 창고 문을 열자마자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은은한 자스민 향이 풍겨 나오면서 몽환적인 세상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미래지향적이며 가상의 세계

버려진 전축을 재활용하여 강작가가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캐리어모양 오디오에서 라틴음악이 조용히 흐른다. 높다란 천장과 닿은 벽면에 조명을 이용하여 바다 속을 표현한 작품에선 물고기들이 줄지어 노닐고, 선홍색 불빛 아래 산호초들이 하느적거리는 세상이 몽환적이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구리’라는 이름과 필연인건지 구리를 만지며 사는 이 일이 너무 좋더란다. 거친 쇠를 벼리고 담금질하며 활활 타는 대장간 불가마에 청춘을 불사르며 쇠와 함께 녹여버린 세월이 20년이 넘었다. 작가는 평범한 대장장이가 아닌 뛰어난 아티스트이다. 쇠불이하면 농기구나 연장 정도만 생각했는데, 여기저기 제작 설치한 작품들마다 강한 금속이나 쇠붙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선이 부드럽고 예술적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작품들은 미래지향적이며 가상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아기공룡이 공중에 매달려 있고, 박쥐들이 날고, 비행기와 새들이 비상한다. 땅에선 로봇난로에 인간 손을 대용하는 장치가 있다. 작은 소인국세트장에서는 이 끝과 저 끝 양쪽에 두 사람이 앉아 대화하면서 차를 마시고 싶으면 버튼 하나로 줄 타고 오는 장치를 이용하여 마실 수도 있다. 이렇게 화성인들이 사는 상상의 나라처럼 미래지향적 작품이지만, 만드는 과정은 무쇠를 달구어 불집게로 모루에 올려놓곤 메를 이용하여 망치로 내리치는 일을 반복하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해야 한다. 모든 쇠나 금속을 가리지 않고 작업을 하지만 강 작가가 특히 좋아하는 건 인류가 최초로 발견한 금속이자 자신의 이름과 같은 구리라고 말한다. 금속을 주재료로 생활에 필요한 소품이나 액세서리 등의 장식품을 만들어 아내가 운영하는 일산의 금속공예 전시장으로 보낸다. 작가는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 돌에 쇠를 접목한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작품들도 눈에 띤다.




즐거운 거인, 강구리

옆방에는 풀무로 불을 피워 쇠를 달구는 커다란 화로가 있다. 따따따따… 따발총 쏘는 굉음을 울리며 기계를 돌리니 매캐한 냇내가 나면서 광활한 불꽃의 향연이 벌어진다. 별이 쏟아진다. 불씨들이 우수수 땅으로 쏟아지는 것이 불꽃놀이를 방불케 한다. 땅 땅 땅 땅… 땡 땡 땡 댕…쇠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빨갛게 달군 쇠막대기를 모루 위에 올려놓고 묵직한 망치로 내리치는 일을 반복한다. 해머는 힘의 반동을 이용하여 내리쳐야한단다. 이렇게 신기할 수가, 두툼한 쇠 덩이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모양으로 변했다.
강 작가가 활용하는 단조법(鍛造法)은, 열을 가하여 부드럽게 된 금속을 두들겨 펴서 어떤 형태를 만들거나, 얇은 금속판을 만든 다음 잘라내면서 형태를 만드는 방법이다. ‘오래 사귀었습니다.’ 어찌 쇠붙이를 진흙 주무르듯 하느냐는 질문에 간단히 답한다. 오래 사귀다 보니 쇠를 쇠로 본 적 없다. 오랜 친구처럼 금속의 성질을 알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에 맞는 작품을 상상하는 그대로 만들 수 있다. 질김과 가단성이 풍부한 철은 연하고 압연(壓延)이 잘되기 때문에 얇은 종이보다 더 얇은 판으로도 만들 수 있고, 구리는 식어서도 후이나 스트레스를 주면 원위치로 가는 성질이 있다.



신의 손 김 작가는 난로작가라고 할 만큼 많은 난로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원생활을 지향하는 추세에 맞춰 단순 난로가 아닌, 여러 용도를 겸한 로봇난로제작을 상상하며 꿈꾸고 있다. 장인들의 전통공예를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면서 공예창조의 정신은 정지되었고, 기술전통은 타락되었음을 지적하면서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창조는 필요에 의하여 나온다. 현대인들이 요구하는 조형감각이 그의 예술성을 깨우고 주문제작을 하게 한다. 그가 제작한 미래의 소인국세트장이 어린이 회관에 설치되어, 많은 어린이들이 ‘즐거운 거인’이 되는 상상을 해보았다.

/ 이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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