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주먹이 운다-‘장관식·김원일 복싱GYM’ 장관식 관장
''



거리에서 매 맞는 복서가 있다. 청주시 산남동 먹자골목 입구에 단돈 1만원을 내면, 글러브를 끼고 마음껏 복서를 두드릴 수 있다. 하지만 주먹을 쉽게 상대편을 맞추기란 만만치 않다. 왜냐하면 상대는 전 복싱국가대표 출신인 장관식 관장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이 행사는 사실 장관식 관장이 2013년 가을 처음 시작한 ‘불우이웃돕기행사’의 일환이었다. 이른바 ‘주먹이 운다.’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 복싱국가대표 출신인 장관식(33) 관장은 지난 2014년 11월 제95회 전국체육대회를 끝으로 링을 떠났다. 장 관장은 7년 동안 복싱 국가대표선수로 활약하면서 각종 대회에 메달을 거머쥔 복서였다. 그는 체육관을 열면서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여러 방안을 고심하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나눔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장관식(33)관장은 “살면서 복싱 이외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 자신과의 싸움으로 일관된 삶이었다. 그러다 선수생활을 접고 체육관을 열면서 내가 아닌, 주변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그때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 ‘주먹이 운다.’라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한다.

주먹이 운다!
‘주먹이 운다.’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은 2005년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 ‘주먹이 운다.’에서 착안했다. 주인공 태식은 한때 아시안 게임 복싱 은메달리스트로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태식이 길거리 한복판에서 돈을 받고 사람들에게 매 맞아 주는 일을 한다. 도박으로 진 빚과 공장의 화재로 인해, 가진 것을 모두 날린 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거리의 매 맞는 복서로 나서게 된 것이다.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것은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뿐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진 그에게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이혼을 요구해 오고, 삶의 유일한 희망인 아들 ‘서진’이와 함께 살 수 없게 되자 태식은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이제 더 이상 물러 설 곳도, 잃을 것도 없는 인생 막장의 늙은 복서 태식은 다시금 희망을 품고 신인왕 전 출전을 결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영화 속 태식의 희망과 장 관장의 희망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태식의 희망과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하는 장 관장의 마음이 맞물려 있다.
장관식 관장은 “우연히 저녁 회식자리에서 창밖으로 폐지를 줍고 있는 할머니를 목격하게 되었다. 문득 ‘내가 저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라는 생각했다. 일상의 스트레스도 운동을 통해 풀면서 그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돌려준다면 일거양득이라고 판단했다.”라고 말한다.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이 오면서 ‘주먹이 운다.’ 이벤트를 진행하기가 어려워지자, 장 관장은 고민 끝에 같은 장소에서 매주 금요일 군고구마를 팔았다. 그렇게 판 수익금 200만원으로 다시 연탄을 구입, 독거노인들에게 기증했다. 벌써 3년째 이 행사를 이어오고 있는 장관식 관장을 지난 수요일 오전, 운동 열기가 가득한 ‘장관식 복싱GYM’에서 만났다.




지치면 지고 미치면 이긴다.
Q. 장관식 관장의 복싱 입문 계기가 궁금했다.
A. 중학교 1학년 입문했다. 체격이 왜소했으나 운동을 좋아했다. 처음 충주 미덕중학교 복싱부를 찾았는데 삭막하고 무서웠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운동을 하다 보니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복싱을 반대했다. 현재 충주시청 감독님인 김성일 관장님이 부모님께 약속을 했다. ‘1997년 전국복싱연맹회장배 대회에서 메달을 따면 계속 운동을 시키고 못 따면 안 시키겠다.’고. 그렇게 해서 처녀 출전한 대회에서 핀급 금메달을 따면서 복싱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부모님도 인정해 본격적으로 복싱선수로의 꿈을 키워갔다. 복싱학생선수권 5연패를 하기도 했다. 2002년 고3때는 전국체전 금메달을 땄다. 그 이후, 7년 동안 복싱국가대표 선수를 지냈다.




Q. 올림픽에서 메달의 꿈은 없었나?
A. 간절했지만, 매번 문턱에서 좌절했다. 올림픽선발 1차전에서는 수차례 1등으로 올랐으나 최종 선발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한국체대에서 상무를 거쳐 보은군청 소속으로 7년 동안 국가대표 선수를 역임하면서 31살까지 올림픽에 도전했었다. 태릉선수촌에서 불암산 정상까지 모든 종목 국가대표선수 160명이 도전하는 대회에서 1등을 했다. 태릉선수촌에서 불암산 정상까지 21분30초를 기록했다. 아직도 그 기록은 안 깨지고 있다. 얼마 전, 배우 이시영씨가 복싱의 붐을 일어나면서 반가웠다. 선수생활에서 이제는 지도자로 복싱인의 저변을 확대하고 싶었다. 엘리트 운동선수도 중요하지만, 일반인들도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직접 운동을 하다, 가르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았다. 수없이 미트를 대주면서 활력 있는 체육관의 꿈을 키웠다.

Q. 회원수 500명을 돌파했고, 벌써 2개의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비결이 있다면?
A. 산남동, 분평동 체육관 2개를 운영하고 있다. 장관식 만의 ‘복싱 타바타’를 만들었다. 복싱을 응용한 댄스다. 흥겹게 음악 맞춰 율동처럼 복싱 동작으로 하는 동작이다. 이와 함께 개인 미트 훈련, 복싱 서키트가 있다. 사람 인원수에 맞춰 동작을 만들어 반복한다. 자전거 타기, 복근운동, 순환운동, 여러 가지 운동동작을 만들어서 기초체력과 근력 그리고 전신운동을 통해 다이어트 효과도 있다. 복싱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저절로 풀린다. 특히 비만에 특효약이다. 나름의 성공 비결이 있다면 매일 모든 회원들에게 손 미트와 트레이닝을 직접 시켰다. 그것이 성공의 비결인 것 같다. 회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개인의 특성에 맞춰 운동을 지도했다. 현대인의 건강 적신호인 비만해결과 복싱을 연결시켰다. 그것이 먹혔다. 분평동 ‘개미와 배짱이’대표로 있는 홍석우 회원의 경우 125kg에서 78kg으로 감량했다. 1년 만에 47kg를 감량했다.



Q. 꿈이 있다면?
A. “신조가 ‘지치면 지고 미치면 이긴다.’다. 500명의 회원과 늘 함께 한다. 삶은 지치는 경우가 많다. 회사원은 일에 지치고 주부는 살림에 지친다. 복싱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연다. 한순간 웃으면서 생활의 활력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꿈을 말하기보다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 이 행복을 발판으로 더욱 큰 꿈을 키워나가겠다. 손 미트를 80세까지 대주고 싶다(웃음). 돈이 우선이 아니다. 사람이 우선이다.”


- ‘장관식·김원일 복싱GYM’ 장관식 관장 / ☏010-9197-4436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