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항아리칼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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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쥔 어머니는 우는 여자가 아닌, 새끼를 먹이는 어미가 되어 칼자국마다에 강인한 모성과 생명력을 담았다. 그러니까 새끼들은 엄마의 음식만 먹은 것이 아니라, 그 음식에 난 칼자국까지 함께 삼켰고, 무수한 칼자국이 몸 구석구석 뼛속까지 새겨졌기에 '어미가 아픈 것'이다."
-김애란의 단편집 <칼자국>中



김애란의 소설 '칼자국'은 엄마와 연결되어 있다. 칼국수는 어떻게 끓여야 한다는 정석이 없다. 기호에 따른 식재료를 사용하여 가정에서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이 칼국수다. 기본으로 놓여 있는 것은 작은 항아리 두 개, 다진 풋고추 그리고 양념장 한 종지다. 항아리에서 깍두기와 겉절이를 꺼내 나란히 담아 놓자 창 넘어 온 햇살이 따스하게 비춰준다. 대개는 칼국수가 나오기 전, 먼저 한입 베어 물어 보는 깍두기 맛이 그 집의 음식 솜씨를 판가름해보는 중요한 기준이다. 깍두기나 겉절이가 맛이 있으면 십중팔구 그 집 메인 요리는 먹어볼 것도 없이 맛있다. 아삭한 깍두기의 상큼한 맛이 창의 햇살을 더 환하게 만들어 준다.



서원대 항아리 ‘칼제비’는 오히려 욕심 많은 고객들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수제비도 먹고 싶고, 칼국수도 끌리니 합쳐서 칼제비가 태어났다. 손으로 민 덕분에 어떤 곳은 얇아서 하들하들하고, 어떤 부분은 두툼해 씹는 맛이 근사하다. 성큼성큼 밀가루 반죽을 하고 손으로 툭툭 떼어내 뜨거운 물에 담기면 그대로 칼국수가 된다. 수제비의 뭉근한 식감과 칼국수의 후루룩 말리는 시원한 느낌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먹고 나면 입안에 구수한 맛이 감돈다. 맛난 음식을 먹고 나면 어쩐지 향이 몸에 배어드는 느낌이다. 아삭한 깍두기나 마늘향이 알싸한 겉절이로 입가심하고 나면, 점심으로 이만큼 개운하기도 드물다.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는 칼국수를 두고 "까닭 없이 위로받고 싶어지는 날 한 그릇씩 먹고 나면 뱃속뿐 아니라 마음속까지 훈훈하고 따뜻해지면서 좀 전의 고적감은 눈 녹듯이 사라지는" 양식이었다고 추억한다.
서원대 항아리 칼수제비의 국물 맛은 담백하면서도 뭔가 끌리는 맛이 남다르다. 수제비는 원래 구수한 국물은 다시마와 멸치, 무를 넣고 2시간 이상 우려낸 것으로 뽀얗게 진국이 우러날 때까지 끓이는 것이 포인트다. 집에서도 큰 냄비에 넉넉히 끓여, 남은 국물을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찌개나 국을 끓일 때 쓰면 훌륭한 맛을 낼 수 있다.



수제비 반죽은 물과 소금만 넣어 만든다. 국물을 끓이다가 얇게 뗀 수제비를 넣고 감자, 호박, 조개를 함께 넣어 끓인다. 여기에 당근, 양파, 대파, 다진 마늘을 넣고 소금으로 약간 싱거울 정도로 간을 한다. 마지막으로 그릇에 담아 김 가루를 고명으로 뿌린다. 짭짤하고 얼큰하게 먹고 싶으면 간장에 고추를 다져 넣은 양념장을 뿌려 먹는다. 이때, 고추는 매운맛이 강한 청양고추가 최고다.
수제비는 장국을 끓여 부드럽게 반죽한 밀가루를 손으로 얇게 떼어 넣어서 구수하게 끓이는 서민 음식이다. 장국은 조개나 쇠고기로 끓이기도 하며 멸치를 넣어 끓이면 국물이 시원하고, 채소나 미역만 넣고 끓이기도 한다. 여름철에는 애호박이나 감자를 얇게 썰어 함께 끓여도 맛있다. 밀가루에 녹말가루를 섞으면 한결 매끄럽다. 경상도 통영 지방에서는 수제비를 군둥집, 이북에서는 뜨더국이라고 부른다.
서원대 항아리 칼수제비집의 메뉴는 칼국수가 4천원, 칼수제비 4천원, 수제비 4천5백원이다. 수제비가 좀 더 비싼 이유는 일일이 손으로 떼는 품이 더 들어 그럴 것이라는 추측뿐이다. 테이블 7개의 단출한 식당이다.
학기 중에는 학생들이 가득차서 자리를 잡기 힘든 곳이다. 방학 때가 되어야 그나마 한가한 편이다. 식사 후에는 커피를 한 잔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주인의 마음도 따뜻하다.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은 휴무다. 칼국수와 함께 따라온 겉절이는 그야말로 일품. 양도 많고 맛도 있어 먹고 나면 가득한 포만감이 밀려온다. 국물도 진해서 후루룩 다 마시게 된다. 조금만 먹어야지 하고 굳게 결심해보지만, 매번 실패하고 오는 집이다.
들깨가루와 다대기, 고추 다진 것 까지 고객의 식성에 맞게 제공되어 좋다. 칼국수 먹다 들깨가루를 넣어 먹으면 고소한 맛이 더해진다. 식당이름은 ‘항아리’지만, 칼제비가 항아리에 담겨 나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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