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50년 전통의 진짜 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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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벌써 가을이 저만치 물러나 있다. 그러다 다시 찬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여미게 되면 몸에서 따뜻한 국물이 저절로 당긴다.

금강설렁탕은 청주 육거리 시장에서도 가장 오래된 설렁탕집이다. 1967년 문을 열어 대물림으로 운영하는 가게다.



국내산 한우 설렁탕과 수육이 맛있다. 오래된 노인고객들이 20~30년 변함없이 단골로 지속된 것은 변하지 않은 정직한 맛 때문이 아닐까. 쌀쌀한 날씨에 비라도 부슬부슬 내리면 은근히 댕기는 집이 금강설렁탕집이다. 청주 육거리 금강설렁탕은 오로지 사골만으로 맛을 낸다. 그래서 국물에 잡내가 없고 맛도 깔끔하다. 뿌옇게 우러난 감칠맛 나는 탕 맛을 좋아하는 고객이라면 이 집 설렁탕의 맛이 심심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국물을 입에 떠 넣으면서 맛을 음미해보면 깔끔하면서도 깊고, 속이 편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기가 젤리처럼 쫄깃하고 우설 부분은 입에서 녹는 느낌이다. 부드럽다”

맛을 아는 식객들은 금강설렁탕의 국물 맛과 고기 맛은 변할 수 없는 전통이라고 입을 모은다. 설렁탕을 좋아하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흔히 ‘청주에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설렁탕이 두 곳’을 칭하면, 그 하나는 청대 근처에 있는 ‘우암설렁탕’과 육거리 시장의 ‘금강설렁탕’이다. 우암설렁탕이 뽀얀 국물이면서도 진하다면 금강설렁탕은 맑으면서 깊다.

뜨거운 뚝배기에 나온 설렁탕은 구수한 향기와 말간 국물 가운데 섬처럼 삐져나온 고기들이 식욕을 당기게 한다. 옆 좌석의 노인 두 분이 술잔을 기울이면서 지난 세월을 이야기한다.

“이집 곰탕과 벌써 20년의 삶을 살았어. 미우나 고우나 이 맛에 길들여졌어.”



음식은 단지 먹는 의미를 넘어 삶의 향기가 스며있고, 애환이 오롯이 배어있다. 요즘에는 곰탕과 설렁탕의 구분이 점점 없어지고 있지만, 사용하는 고기 부위와 간을 맞추는 법에서도 차이가 있다.
설렁탕은 사골과 도가니, 양지머리 또는 사태를 넣고, 우설(牛舌), 허파, 지라 등과 잡육을 뼈째 모두 한 솥에 넣고 끓인다. 이에 비하여 곰탕은 소의 내장 중 곱창, 양, 곤자소니 등을 많이 넣고 끓인다. 설렁탕에 허파나 창자를 넣기도 하나 곰탕보다 뼈가 많이 들어가서 국물이 한결 뽀얗다. 곤자소니는 소의 창자 끝에 달린 기름기 많은 부분이고, 도가니는 무릎도가니와 소의 볼깃살 두 가지인데 보통 무릎도가니를 말한다. 곰탕은 다시마나 무를 넣어 끓이며, 국물이 진하고 기름지다. 또 설렁탕은 먹는 사람이 소금과 파를 넣고 간을 맞추어 먹지만, 곰탕은 국을 끓일 때 간장(진간장)으로 간을 맞추어서 낸다. 하지만 요즘은 설렁탕이든 곰탕이든 대부분 먹을 때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먹는다.


설렁탕이란 말의 유래도 알면 재미있다. 설렁설렁 끓여서 설렁탕이 아니다. 바로 선농탕(先農湯)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조선은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였다. 봄이 되면 임금은 곡식의 신을 모신 선농단(先農壇)과 양잠(養蠶)의 신을 모신 선잠단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 또 임금은 백성들과 함께 직접 소를 몰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의식을 동대문 밖 전농동에서 행하였다. 이것을 왕이 친히 밭을 간다고 해서 친경례(親耕禮)라고 하였다. 친경례가 끝나면 왕은 함께 수고한 백성들에게 술과 음식을 내려주었다. 술은 막걸리를 주었고, 음식은 소를 고기와 뼈째 푹 고은 선농탕(先農湯)을 백성에게 나눠 줬다. 그렇게 사람들의 입에서 내려오면서 지금의 설렁탕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금강설렁탕은 그 하나로 족하다. 다만 파를 듬뿍 넣으면 더 맛있다. 다른 반찬은 필요없다. 잘 익은 깍두기, 송송 썬 파, 다데기라면 그만이다.


금강설렁탕은 딱 두 가지 메뉴만 판다. 설렁탕 7천원, 설렁탕(특)9천원, 수육(400g) 2만5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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