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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이면 길가에 침을 뱉어도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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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21살이었을 적, 아버지가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하소연이라기 보다는 그냥 그의 넋두리 이었다. “내는 돈 버는 기계같데이, 내도 내 하고 싶은 데로 내 인생을 살고싶데이, 아이고 외롭다 외로버. 믄 말인지 알긋나?” 철이 없던 나는 무심한 척 “아빠 머라삿노” 라고 못 들은 척 그냥 넘어갔었다. 사실 그의 이 말 한마디와 그의 표정이 강산이 변한 지금도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지금 비록 중년은 아니지만 각종 언론매체에서 중년에 대해서 많이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이상하게 유독 중년의 외로움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고 그들의 쓸쓸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일반적인 보통의 40대의 뒷모습은 유독 처량해 보이고 허전해 보인다. 그들에게는 토끼 같은 아이가 있을 것이고, 야리야리한 여우에서 앙칼진 야생 곰으로 변해버린 부인이 있을 것이고, 당장이라도 회사 그만 두고 싶지만 야생 곰 같은 부인의 등살과 아빠 용돈 좀 줘 라고 하는 토끼 같은 새끼들과 집 담보로 잡혀있는 은행 이자를 생각하면 무겁지만 그래도 내일의 해는 뜬다는 그 일념 하나로 터벅터벅 앞으로 행진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현실일 것이다.


남성의 수명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의학기술 및 건강 관심도가 높아짐에 따라 수명도 점점 늘고 있고 무기력함의 이미지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중년세대는 주목 받는 세대가 아니었다. 중년이라는 말을 인식하게 된 그 역사도 길지가 않다. 유아기, 청소년기, 청년 혹은 성인 그리고 노인으로 나뉘어져 있었지 이 사이에 중년은 없었다. 1950년대 해도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수명은 약 60세 정도였다. 그 당시의 40대 50대면 노인에 접어드는 그런 세대였던 것이다. 그래서 환갑이 되면 성대하게 잔치를 열곤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환갑이 되면 가족끼리 조촐하게 식사는 하는 정도이지 않는가? 남성의 수명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의학기술 및 건강 관심도가 높아짐에 따라 수명도 점점 늘고 있고 무기력함의 이미지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그렇게 되면서 7080세대, 386세대, 베이비붐 세대인 40대 50대들에게 중년이라는 네이밍을 얻게 된 것이다.
40대 50대들은 오늘 날의 대부분의 핵심 소비층이며 인구분포로 따져도 두터운 층을 차지하고 있지만 크게 주목 받지는 못했다. 그들의 라이프스타일만 보아도 가정 및 사회생활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미래가 그들에게 달려있다는 확실한 존재임에 불구하고 우리 모두 그들에게 무관심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중년이 아니라 중년의 외로움에 대해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 외로움에 때문에 갖은 유혹에 흔들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를 남자로 봐주는 여자한테 흔들릴 것이고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빨리 올 줄 몰랐던 은퇴와 실직으로 정서적인 충격과 현실적인 문제 등 고민해야 하는 새로운 선택들에 대한 유혹, ‘딸~ 뽀뽀 한 번만 하자’ 라고 하면 ‘아빠 나 다 컸어 왜이래’ 하면서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라며 손사래 치는 자녀들, 남보다 더 멀어진 아내와의 관계 등 그 어떠한 상처보다 제일 아프고 해결하기 어려운 가족들간의 관계에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기만 하다고 한다.



사춘기보다 더 무섭다는 사십춘기를 겪고 있는 남기표 대표도 그 외로움을 겪고 있었다 한다. 20대 30대는 정말 뒤돌아 볼 여유도 없었고, 미래를 내다 볼 여유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 숨 쉴 겨를조차 없었다. 쉬고 싶지만 쉴 수가 없었다. 본인 인생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어서 그의 인생을 반쯤 포기한 채로 살았었다고 한다. 참 많은 일들을 했었다고 한다. 이것 저것 안 해본 장사도 없었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면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살았다. 어느 날 그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사업에 어려움도 겪었고 너무 너무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냥 방전된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아예 의욕을 잃었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나의 외로움이 제일 중요한 거였고 이 세상에서 나만 가장 외롭고 힘든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또래 친구들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그 외로움이 나만 느끼는 게 아니고 40대 접어든 남자들이 모두 다 겪는 그런 외로움이었다. 정말 크다면 크다고 할 수 있고 아무것도 아니다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외로움이었다. 그러던 중 아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평생 폐인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식들한테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기 싫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다. 그러던 중 대게와 킹크랩을 접하게 되었고 무작정 평택의 대게 전문식당을 하는 지인을 찾아가서 대게와 킹크랩 손질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매일같이 청주에서 평택까지 출퇴근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대게와 킹크랩에만 집중을 했고 드디어 가게 오픈을 할 수가 있었다. 내 아내와 자식들이 먹는 음식이라 생각하고 가장 신선한 대게와 킹크랩만을 공수 받고 부가적으로 손님상에 내 놓는 반찬들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정성에 보답이라도 해 주듯이 점점 손님들이 많이 찾아주시고 있다고 한다. 대게와 킹크랩은 찜기에 찌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손님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혼자 고생한다고 안쓰러워하는 아내와 자식들도 홀서빙도 도와주고 많은 일손을 거들어 주고 있다. 요즘 들어서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항상 응원해주는 아내와 이제 성인이 된 자식들이 양 팔에 붙어서 기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올라 갈 수 있도록 밑에서 올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맛있게 드시고 가는 손님들이 또 찾아와 주시고 감사하다고 인사해주시고 알고 보면 정말 행복한 40대를 보내고 있었는데 왜 진작에 이 사실을 알았을까라는 방황했던 시절의 후회도 살짝 하게 된다.
그는 앞으로 더 성실하게 살 것이라고 했다. 누구를 위해서 아니라 결국 모든 것이 본인 스스로를 위한 것이므로 본인을 위해서 더 성실하게 살 것이라고 했다. 사춘기 자녀들도 한 때 방황했듯이 사십춘기 역시 그에게는 한 때였고 더 힘내서 즐겁게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대한민국 모든 40대들. 결국엔 다 지나갈 것들이니 지금 힘듦에 지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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