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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의 역사
'세계사를 바꾼 식품, 우리조상들은 어떻게 소비했을까'


향신료와 장
향신료는 식물의 열매, 씨앗, 꽃, 뿌리 등을 이용해서 음식의 맛과 향을 북돋거나, 색깔을 내어 식욕을 증진시키고 소화를 도우며, 육류의 누린내와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는 기능을 한다. 향신료에는 후추, 겨자, 고추, 바닐라, 사프란, 생강, 계피, 육두구, 올스파이스, 정향, 통카 열매, 고추, 깨, 파, 마늘 등 그 종류가 매우 많다. 또한 넓은 의미에서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장류(醬類)와 설탕, 소금도 향신료에 포함된다.
콩의 원산지는 한반도와 만주 일대로 알려져 있다. 일찍부터 우리 조상들은 콩을 이용하여 장류를 만들어 먹었다. 장(醬)은 음식의 우두머리(長)로 여겨졌다. 408년에 만들어진 고구려 덕흥리 고분의 묵서명(墨書銘)에는 무덤 주인공의 집에 아침에 먹을 간장(鹽?)을 한 창고 분이나 두었다고 적고 있다. 또 683년 신라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이 왕비를 새로 맞이할 때 처가에 보낸 물품에는 간장, 된장 등이 대량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1424년 조선에서는 강원도의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창고에 저장된 식품을 방출하여, 15세 이상 남녀에게 쌀 4홉, 콩 3홉, 장3홉을 주었고, 그 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약간의 차등을 주어 나눠주었다. 이처럼 장류는 우리조상들에게는 식품첨가물인 향신료가 아니라, 필수 식품일 정도로 소비가 많았다. 간장, 된장 등만 있으면 반찬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향신료는 각 나라의 식생활에 따라 그 범위와 종류가 다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도 장류는 향신료와 별개로 보는 것이 옳겠다. 우리 조상들은 장을 주로 소비하였고 고려시대 이후 육류 소비가 적었던 만큼, 유럽 사람들에 비해 외국의 향신료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하지만 미각이란 언제나 새로운 맛을 찾는 만큼, 우리 역사에도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와 사용되었다.



마늘과 달래
문헌 기록에 등장하는 가장 오랜 향신료는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먹었다는 산(蒜)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산은 달래, 마늘을 다 일컫는다. 달래는 자생종이고, 마늘은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다. 마늘의 원산지는 이집트, 또는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2,500년 전에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 노동자들에게 마늘을 지급할 정도로 마늘 소비의 역사가 오래되었다. 중국에서는 마늘이 기원전 2세기에 장건(張騫)이 가지고 왔기 때문에 호(葫)라고도 하고, 대산(大蒜)이라고도 한다. 마늘이 초원길을 타고 유목민에 의해 전해졌다면 고조선 시대에도 소비되었을 가능성이 있겠지만, 고조선 사람들이 먹었던 매운 맛을 내는 향신료라면 단연코 달래라고 하겠다.
720년에 완성된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서기 110년 기록에 마늘 관련 기사가 등장하는데, 마늘이 귀신을 몰아내고 요사스런 기운을 쫓아냈다고 한다. 이 기록의 연대는 신뢰할 수는 없지만, 마늘이 삼국시대에 한반도를 거쳐 일본 열도에도 전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삼국사기] 〈제사지(祭祀志)>에는 신라에서는 매년 입추(立秋) 후 해일(亥日)에 산원(蒜園)에서 후농제(後農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산원은 야생 달래보다는 마늘을 재배하는 밭일 가능성이 크다.
마늘이 내는 강한 향기는 악귀나 액을 쫓는 힘을 갖고 있다고 여겨져, 복숭아, 고춧가루와 함께 제사 음식에는 쓰지 않는다. 또한 마늘은 수련을 방해하는 음식인 오신채(五辛菜- 마늘, 파, 부추, 달래, 생강)의 대표적인 식품으로 여겨져 불가(佛家)에서 금하는 식품이다. 하지만 달래보다 강한 맛을 내는 마늘은 비린내를 없애고 음식의 맛을 좋게 하며 식욕 증진 효과가 높기 때문에, 삼국시대 이후 우리나라 음식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향신료로 자리 잡았다.
(左)마늘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향신료로 이용되었다. 마늘의 강한 향은 액을 쫓는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右)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먹었다는 향신료는 달래일 가능성이 높다.

수입된 향신료 정향과 육두구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향신료는 후추, 시나몬(Cinnamon- 육계나무의 껍질), 정향(丁香, Clove), 육두구(肉荳?, Nutmeg)등을 들 수 있다. 자메이카 원산으로 육두구, 정향, 시나몬(계피) 3가지 맛을 겸비한 올스파이스(Allspice)는 비교적 새로운 향료로 최근에야 우리나라에 알려졌고, 이란이 주생산지로 유럽에 널리 알려진 사프란(Safran)도 우리 나라에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또 지중해가 원산지인 월계수 잎은 최근에야 파스타 등의 소비가 늘면서 수입이 늘어나고 있는 향신료다. 하지만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정향과 육두구는 조선시대 초에 이미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정향은 고기의 누린내를 없애주고 방부효과가 탁월한 향신료이며, 육두구는 강장제 등의 약제로도 사용하는 한편 생선요리 등에 소스로 사용되기도 한다.
1401년 명나라는 조선의 말(馬) 1만 필과 바꾸기 위해, 면포, 모시, 명주실 등과 함께 각종 약재, 그리고 정향(丁香), 육두구(肉豆?), 양강(良薑: 생강 보다 강한 향신료)을 보내온 바 있다. 1421년에는 일본의 일기주(一岐州)의 도주(島主)가 육두구 20근 등을 바쳐온 바 있었다. 해외교역이 활발했던 유구국(琉球國)에서도 1483년 후추 500근과 함께 육두구 100근을 바친 바 있었다. 이처럼 정향과 육두구는 명, 일본, 유구국을 통해 조선에 들어왔지만, 직접 교역이 아닌 간접 무역을 통해 들여온 물건이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급이 될 수 없어서 소비 또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左) 정향은 정향나무의 꽃봉오리로, 인도네시아 몰루카섬이 원산지이다.
육류의 누린내를 잡아주기 때문에 돼지고기 요리에 주로 쓰이며, 푸딩, 수프, 과자류에도 이용된다.
(右) 육두구는 인도네시아 몰루카제도가 원산지로, Nutmeg란 이름은 사향향기가 나는 호두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초에 우리나라에 전해져 생선요리 등에 쓰였다.

고추는 언제부터 먹었을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향신료는 고추다. 매운 고추를 고추로 만든 소스인 고추장에 찍어먹고, 고추가 듬뿍 든 김치를 먹는 한국인의 고추 소비량은 엄청나다. 고추는 아메리카가 원산지다. 고추가 한국에 전해진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대체로 1592년 이후에 전해진 것으로 본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한 허균(許筠,1569?1618)이 쓴 [도문대작(屠門大爵- 전국 팔도의 명물 토산품과 별미음식을 소개한 책)] 중에 초시(椒?) 즉 고추장이 기록되어 있는 만큼, 고추는 아메리카에서 발견된 이후 약 100년 만에 조선에도 전해졌던 것이다.
다른 향신료와 달리 고추는 온대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 탓에 우리나라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고추는 1700년 무렵 김치에 넣어 사용되면서부터 소비량이 급증했다. 겨울에 야채를 먹기 위해 담그기 시작한 김치는 소금을 넣어 짜게 절여야 오래 보존할 수 있다. 그런데 소금만으로 짜게 담그면 김치에서 쓴 맛이 난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김치에 젓갈을 넣게 되는데, 젓갈을 넣은 김치는 맛은 좋아지지만 비릿한 점이 있다. 이 비릿한 맛을 없애려면 후추, 초피(천초, 산초)와 같은 향신료를 넣어야 한다. 우리나라 기후에도 맞는 고추가 전래된 이후부터 김치에 고춧가루를 넣어 매운 맛을 내면서, 김치는 크게 발전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고추는 우리의 음식문화를 바꾼 대표적인 향신료이다.
온대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탓에 널리 재배되었고, 1700년 무렵 김치에 고춧가루를 넣기 시작하면서 소비량이 급증하였다.

고추 이전의 매운 맛, 초피
한국인은 매운 맛을 좋아한다. 고추가 전래되기 전에 서민들이 매운 맛을 내기 위해 사용한 것은 값비싼 수입품인 후추가 아니라, 초피였다. 초피나무는 높이 2m 정도의 키 큰 낙엽수로 9월에 열매가 익는다. 열매에서 종자를 빼낸 과피가 향신료로 쓰이는데, 특히 우리나라에서 미꾸라지로 만든 추어탕을 먹을 때는 으레 초피가루를 넣어 맛을 낸다. 그런데 초피는 대량생산을 하기 어렵다. 나무에서 열매를 따고 씻어서 말리고 가루로 빻아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고추는 대량 생산이 가능한 값싸고 좋은 향신료였으므로, 초피를 대신해 매운 맛을 내는 대표 향신료로 우리나라에서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보편화된 향신료
한때 보석보다 비싸게 거래되던 향신료였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 고추, 바닐라, 올스파이스 같은 새로운 향신료가 발견되면서, 동남아시아 향신료의 가격이 떨어졌다. 특히 후추만큼 맵고, 온대 지역에서도 자랄 수 있는 고추는 우리나라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향신료가 값싸지면서 향신료의 사용 또한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다양한 향신료의 사용은 음식의 맛을 크게 바뀌었고, 식생활도 변화시켰다. 향신료는 세계사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고추와 같은 향신료는 우리 음식문화마저도 크게 바꾼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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