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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의 산 역사(歷史)를 만나다 - 유정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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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은 자원봉사의 산 역사(歷史)입니다.’
2009년부터 시작된 자원봉사자와의 인터뷰 중에 수없이 거론된 사람이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한결같이 “그분은 자원봉사의 산 증인이며, 역사입니다. 봉사자들의 영원한 어머니 같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부터 자원봉사 활동은 그녀의 삶 일부였다. 현재는 금천동의 한 아파트 경로당 노인회장을 맡고 있다. 겨울의 기운은 조금씩 걷히고, 제법 봄기운이 완연한 지난 25일 시내의 한 중국집에서 그분을 만났다. 그분은 바로 청주시 자원봉사센터 초대 센터장을 지낸 유정순(78)회장이었다.

“자원봉사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는?”
“58년도에 처음 초등교사로 발령받아서 가난한 제자들을 돌봤어요. 당시 너무 가난해서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제자들이 태반이었다. 그때 급식용 분유를 드럼통에 넣어서 미군이 보내주었지요. 아기를 낳고도 영양이 부족해 젖이 나오지 않는 주변 학부모인 산모들에게 몰래 분유를 나누어주었죠. 아마 그것이 봉사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본격적인 활동은 70년대 초, 당시 청주 시장인 큰 오빠의 말 한마디로 시작되었죠. 청주시 노인들을 위해 경노잔치를 열어보자는 것이었어요. 약 300명의 노인들을 모아 제일교회에서 충북 최초로 경로잔치를 열었어요. 그 뒤로 새마을부녀회, 구국여성봉사단, 자유총연맹, 충북여성단체협의회 등 활동을 했습니다.”
“회장님께 영향을 준 인물은?”
“어머니죠. 어머니는 늦은 밤이면 제게 팔베개를 해주시며 이야기를 잘 들려주셨어요. 콩나물을 키울 때는 온전한 그릇보다 질그릇이 좋다고. 그래야 콩나물의 잔뿌리가 생기지 않고 잘 크는 법이라고. 질그릇은 물을 다 흘려보내지 않고 가슴에 품었다가 조금씩 콩나물에게 나눠주니 콩나물들이 다투지 않고 뿌리를 곱게 내릴 수 있다고 들려주었어요. 그래서 완전한 그릇보다 조금 덜 구워낸 질그릇이 좋은 거라고…. 어쩌면 봉사의 마음은 그런 질그릇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질그릇처럼 완전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품어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느낍니다.”
“질그릇 봉사회를 만드셨지요? 어머니가 들려준 질그릇의 의미였나요?
“네, 어머니가 들려준 질그릇의 의미를 담고 봉사하자는 뜻이었습니다. 반공연맹회로 시작되었던 관변단체가 자유총연맹으로 바뀌었어요. 30~40여명의 인원들이었는데 의례적인 행사보다는 뭔가 뜻 깊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정치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봉사단을 만들기로 한 거죠. 그렇게 만들어진 봉사회가 ‘질그릇 봉사회’였어요.”
“청주시 자원봉사센터 초대 센터장을 지내셨는데, 자원봉사센터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시대가 많이 변했어요. 과거에는 봉사라는 개념도 없었어요. 2천년에 들어와 청주시도 처음 자원봉사센터를 만들었어요. 과거처럼 제도나 행정만으로는 충족할 수 없어요. 제대로 된 복지서비스의 실현을 위해 전문적으로 자원봉사를 이끌고 돕는 기관이 필요한 거죠. 최종 목적지는 사회적으로 어렵고 힘든 이들이 건널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요즈음은 근황은?”
“아파트 경로당 노인회장을 맡고 있어요.(웃음) 일을 그만 두고 한 일 년 집에서 쉬었더니 심심해서 노인정을 나갔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고스톱을 치다가 자꾸 싸우는 겁니다. 작은 돈이지만, 자신의 주머니로 갖고 가니 문제가 된 거죠. 그래서 아예 10원짜리 동전을 각자의 깡통에 500원씩 바꿔놓고 그 돈 안에서 고스톱을 쳐요. 돌아갈 때 즈음 고스톱이 끝나면 서로 딴 것은 돌려줘 깡통에 500원을 그대로 맞춰놓고 가는 겁니다. 그 뒤로 다툼이 없어졌어요.(웃음) 나이 들수록 뭐든 자꾸 움직이고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구나 편안한 곳이 있고, 편안한 관계가 있다. 봉사라는 삶의 흐름을 거슬리지 않고 그대로 순응했다. 자원봉사는 유정순 회장에게 그런 곳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유회장이 편안한 어머니를 가장 존경하듯, 많은 봉사자들이 자연스럽게 그녀를‘어머니’라고 부르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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