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가이드

두물머리 정북토성 따라
정다운 들길에 스민 옛이야기
'오근장과 오창/청주공항/목은영당'


지네장터, 은혜 갚은 두꺼비 <오근장과 오창>
미호천이 어머니처럼 어루만진 들판에는 정겨운 옛이야기가 스며있다. 지금의 오근장과 오창 일대는 ‘지네장터’ 혹은 ‘은혜 갚은 두꺼비’로 불리는 오공창 설화의 무대. 이야기를 알고 그곳을 거닐면 낡아 보이던 것이 새롭게 다가오고, 허전한가 싶은 것이 충만하게 느껴진다. 그 또한 이야기의 힘이다.
옛날에 너른 들에 곡식창고를 짓는 중에 큰 지네 한 마리가 나왔다. 일꾼들이 그 지네를 잡아 술에 담그니, 마을에 변고가 일어나 사람이 죽어나가고, 병충해가 돌았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처녀를 사서 지네에게 바치기로 하는데, 창고 남쪽의 엄나무정이 마을(현재 오창읍 창리 진양아파트 자리)에 사는 아가씨가 팔려갈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아가씨에겐 어느 해인가 장마에 떠내려 온 것을 먹이며 돌봐준 두꺼비가 있었으니, 바로 그 두꺼비가 아가씨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지네를 물리치고 죽는다는 이야기가 지네 오蜈, 지네 공蚣을 쓰는 오공창蜈蚣倉 설화다. 이후 깨어난 아가씨는 창고 일꾼들 중 맘씨 고운 총각을 만나 부부가 되었다던가.
그 옛날 곡식창고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지명은 오늘까지 살아있다. 오공창-오근창-오근장-오창의 지명이 같은 뿌리를 갖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1667년 청주목사 윤세교가 창고를 지어 만 섬의 곡식을 저장했다고 나오는데, 훗날 이 지역에 장이 서게 되자 ‘오근장’으로도 불렸다 한다. 충북선 오근장역은 그 옛이야기의 향기와 함께 설화 속 지명이 남아있는 장소다.
01. 엄나무정이마을 터 02. 오근장역 03. 청주공항

힐링 가로수길 위로 열린 하늘길 <청주공항>
오근장역은 1923년 충북선이 놓이면서 함께 문을 연 아담한 역이다. 청주역을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오근장역이 시내에서 더 가까워지는 바람에 드나드는 발길이 늘었다. 그만큼 많은 애환과 낭만이 철길에 실려 오간 곳이기도 하다. 추억의 이정표 같은 오근장역에서는 지금도 동해 일출을 만나러가는 기차여행과 봄날 남도로의 꽃맞이 여행이 철마다 기찻길을 타고 흘러간다.
오근장역 근처의 청주공항을 향하다 보면 눈길이 머물게 되는 아름다운 길이 있다. 공군 제17전투비행단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이다. 3km 정도의 짧은 드라이브나 걷기를 즐기면서 추억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그 가로수길 너머로는 하늘길 여행이 시작되는 청주공항이 있다.
충청권 유일의 국제공항인 청주공항은 1997년 개항한 이후로 중국, 러시아, 베트남에 이어 일본, 대만 등으로 노선을 확장 중이다.
청주와 인연 깊은 이색의 사당 <목은영당>
버드나무 나루에 가을이 깊고 비가 잠깐 개이니 수촌의 산장 경치가 더욱 선명하네.
하늘마음으로 이슬 다 마르고 나락은 익어 가는데 언덕 너머 끊긴 연기 아득한 풀밭에 떠 있고 구름 사이 저녁햇살 강을 밝게 비추네. ‘청주에 놀러와 돌아가기를 생각하며’ _ 목은시고, 제25권
01. 목은영당 입구 홍살문 02. 목은영당 03.목은영당 전경 04. 주성강당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고려 말 유학자이자 시인인 이색(1328~1396)이 청주의 벗을 만나러 왔다가 회포를 풀고 돌아가며 지은 시다. 청주의 경치를 노래한 것이라 하니 시 속의 버드나무 휘늘어진 나루는 어쩌면 미호천의 오근나루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루 근처에 나락이 익어가는 들판이 펼쳐져 있는 것도 제법 그럴듯하게 연결이 된다. 구름 사이로 석양이 비추는 강 역시 미호천이 아니었을까.
이색은 청주 출신의 한수韓脩(1333~1384)라는 인물과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그래선지 이성계와의 불화로 핍박을 받던 말년, 여주 여강가에 머물며 남긴 시에도 청주에서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대목이 있다. ‘서원의 누각 위에서 벗과 함께 술을 마시던 일을 돌이켜보니回首西原樓上飮’, 그보다 멋진 일이 없었다는 고백이다. 이때의 서원西原이란 다름 아닌 청주의 옛 이름이다. 그뿐인가. 1390년 ‘이초의 난’에 연루된 이색이 모진 국문을 당하고 옥에 갇힌 곳도 청주였다.



한 시대의 낙랑장송이었던 대유학자의 유혼은 그의 사당을 둘러싼 노송들을 닮았으리라. 시류를 쫓아 순응하지 않았던 신념과 이상. 누군들 이 솔숲을 건너온 바람에 마음이 씻기지 않으랴. 목은영당 앞의 주성강당은 후학들이 이색을 기리며 학문을 닦았던 곳이다.
목은영당과 주성강당은 1938년에 그려진 이색의 영정이 봉안된 목은영당. 조선 숙종 때에 창건되어 수차례 중건되었다. 그 목은영당 앞 주성강당은 조선시대 목부재와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어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되었다. 특히 대청마루의 대들보가 우람하고 고졸하다. 영당을 감싸고 있는 노송 숲이 멋스러워 오래 바라보게 된다. <청주시 청원구 주성동 50 (충청대로272번길 230-14)>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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