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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만의 ‘난(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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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어디서 오는가. 어쩌면 봄은 바람 속에 실려오는가보다. 따뜻한 봄바람에 밀려 간 곳은 한국춘란이 가득한 난실. 커다란 비닐하우스지만, 들어가 보면 그 규모와 정교함에 깜짝 놀란다. 길게 늘어선 난실에는 춘란들이 환하게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봄에 꽃이 피는 춘란은 봄을 알리는 꽃이라 해서 보춘화(報春花)라 부르기도 한다. 3월로 접어들면 난들은 제각각 저마다의 색깔 옷을 입고 한껏 자태를 뽐낸다. 봄 햇살이 따스한지 창가에 춘란(春蘭)이 꽃물을 터뜨리고 있는 풍경은 자못 황홀하다. 봄의 꿈틀댐을 알려주는 봄꽃 한 송이, 실눈을 사르르 터질 듯 속살대고 있다.
한국춘란 고현만 대표는 “중국춘란은 1천 년, 일본춘란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한국춘란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0년밖에 되지 않지요. 한국춘란은 중국이나 일본의 춘란보다 원예성이 뛰어난 우수한 난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한 난을 사용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지요.”라며 “한국춘란의 대중화를 통해 이제는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키워나갈 때입니다. 한국 춘란의 잎과 봄에 피는 꽃의 특별한 기품은 그 어떤 꽃에 비길 바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하나의 꽃대에 하나의 꽃

난은 계절도 가리지 않는다. 봄에는 춘란(春蘭)이요, 여름엔 건란(建蘭)이다. 가을엔 소심(素心)이고, 겨울엔 한란(寒蘭)이 유명하다. 지역도 안 가린다. 바람 많은 제주에는 풍란(風蘭), 흑산도에는 흑란(黑蘭), 울릉도에는 울란(鬱蘭)이다. 임오군란이 실패하고 운현궁에 유폐된 흥선대원군의 유일한 소일거리는 묵란(墨蘭)이었다. 바로 화선지에 난초를 치는 거다. 좌절과 울분 때문이었을까. 그의 난초는 연검(軟劍)처럼 서늘하고 예리했다. 초기 힘차고 날카로웠던 잎줄기는 그러나 차차 가늘고 부드러워진다. 체념한 듯, 달관한 듯 바람에도 눕는 난의 모습은 허허롭기까지 했다. 또한 가람 이병기 선생도 시 ‘난초’ 연작에서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 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라고 칭송하지 않았던가.
고현만 대표는 “"해마다 춘란의 꽃이 개화하는 이른 봄엔 숨이 막힐 듯 아름다움에 빠집니다. 춘란은 남이 가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몇 촉 없는 희귀종이라야 일단 높은 점수가 주어집니다. 여기에 잎과 꽃잎의 색깔, 모양, 발육 상태가 최고여야 하지요. 멋진 춘란은 그래서 하루아침에 뚝딱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라며 “난 꽃대를 하나라도 가진 사람의 봄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봄은 너무 다릅니다. 꽃대 하나가 봄의 기운을 몰아오고 거두어 가기도 합니다. 춘란의 매력은 빠져보지 않으면 모르지요.”라며 싱긋 미소 짓는다.
고 대표는 무엇보다도 춘란을 건강하고 오랫동안 키우기 위해서는 휴면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춘란은 약 45일 동안 겨울에 휴면을 취해야 건강한 난으로 천년을 날 수 있습니다. 겨울에 10도에서 0도 사이에 휴면을 취하고 1~2년 사이에 분갈이를 해주면 발색에도 도움이 됩니다.”라고 말한다.

현란한 춘란의 종류와 가치

고현만 대표가 춘란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처럼 친구 따라 산으로 난을 채취하러 갔다 그만 난의 매력에 빠져버렸단다.
“저보다 2~3년 먼저 춘란에 빠져 버린 친구 덕분에 난의 세상을 알게 되었지요. 저희 집 아파트 베란다에서 처음 난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채집도 했지만, 저는 주고 종자를 구입해서 키웠습니다.”
그는 그렇게 난의 세상으로 빠져버렸다. 아예 다니던 직장도 접고 고 대표는 전문적으로 난을 키우게 된 것이다.
“입의 변이로 가치를 따지는 엽예품(葉藝品), 꽃의 색깔이나 형태로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화예품(花藝品), 그리고 돌연변이의 형태가 두 가지 이상 함께 나타나는 복예품(復藝品)이 있어요. 엽예의 으뜸은 중투호입니다. 잎의 가운데로 흰색이나 황색이 깊게 통과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죠. 중투호보다 한 단계 높게 평가하는 것은 중압호입니다. 엽예품으로는 최고의 값과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밖에 수레바퀴처럼 황색이나 흰색이 들어간 형태인 복륜, 뱀 껍질처럼 잎 전체에 녹색 점이 무수히 박혀있는 난인 사피반이 있어요. 또한 요즈음 인기 있는 품종으로 단엽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난쟁이인 셈인데 정상적이지 않은 품종이므로 희소가치가 있는 것입니다.”라며 “꽃의 형태나 색깔로 구분하는 화예품도 또한 다양합니다. 꽃잎 전체가 황토색을 띠는 주금화, 노란 개나리 색을 연상하는 황화, 마치 채소 가지의 색처럼 핀 자화, 꽃잎이 두 가지 색으로 나타나는 복색화가 있지요. 일반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난은 소심(素心)입니다. 마치 정숙한 한국의 여인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모습이 연상됩니다. 이밖에도 백화, 도화, 두화 등이 있어요.”
그의 설명을 듣는 동안, 봄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몰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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