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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상을 굽는 女子 -미선공방 ‘천미선 작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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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렇게 살아왔다.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바람처럼 흘러흘러 오창 변두리 시골마을에 공방을 열었다. 그리고 길게는 2년, 짧게는 몇 개월 인도로 중국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 공방은 지인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얼마 전, 2년 이상 인도에 머물던 천미선 작가가 공방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궁금했다. 흔히 ‘바람 같은 여인’이며 ‘세상에 구애받지 않고 사는 자유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삼겹살을 조금 사 들고 목련과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공방으로 찾아갔다. 시골의 옛집을 훼손하지 않고 붙이고 이어서 만들어진 공방이었다. 표지판도 흙을 구워 장승처럼 세워 이름을 새겼고, 앞뜰의 과실수도 담 없는 대지에서 평안하게 햇빛을 받고 있었다. 공방 입구 나무줄기에는 열매처럼 도자기 컵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머리에 터번을 둘러쓴 여인이 밭을 갈고 있다가 낯선 방문객의 등잔에 눈이 목련처럼 환이 켜졌다. 천미선(52)작가였다.


운명 같은 도자기, 그리고 인도여행

“30대 초반, 도자기를 막 시작할 즈음 인도로 떠났다. 왜 하필 인도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는데 그곳이 인도였다.”
일행은 아무 말 없이 천 작가가 찻상에 차를 담고 우려내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마치 신을 위해 제물(祭物)을 준비하는 제사장의 손길처럼 엄숙하면서도 익숙했다. 하지만 차를 따라주는 손은 고운 여인의 손이 아니라, 흙을 만지고 살아온 투박한 손이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이지만, 눈에는 총기가 돌았으며 말투는 온화했다. 다향이 가득한 실내에 빛이 들어 눈을 들자, 창 너머로 한들한들 초록의 풀들이 바다처럼 너울거렸다.
천작가의 인도 이야기가 차향과 함께 피어올랐다. 생애 처음 2달간의 인도 배낭여행은 커다란 가르침이었다. 그녀는 “한겨울에도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과 소나 돼지가 아무렇게나 도심을 활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나라가 인도다. 사람들은 윤회의 순리 앞에 순응하면서 ‘내가 내가 아니고, 네가 네가 아닌 세상’에 살고 있는 인도를 만났다.”라며 “내 음식을 아무렇게 갖다 먹으면서도 ‘어찌 너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당당히 말하는 인도인에서 나는 무한한 자유를 보았다.”라고 말한다.
천 작가는 처음 생활 공예로 입문해 흙과 도자기가 좋아 전업 작가로 변신했다. 대한민국 명장인 천한봉 선생 공방과 청주 도림공방에서 도자기 빚는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그녀는 청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했다. 청자, 백자, 진사, 흑유 등 도자기에서 표현될 수 있는 다양한 색감과 형태를 전통문양과 함께 찻상으로 담아내는 솜씨와 테크닉이 특별하다고 정평이 나있다. 이제 차 한 잔의 여유와 생활미학이 만나고, 전통의 가치와 혁신의 열정이 함께 어우러진 작품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발상의 전환, 찻상 중앙을 뚫은 퇴수구

2008년 열린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천미선의 휴(休) 찻상展’은 작가에게 커다란 획을 그은 작품전이었다. 그만큼 파격으로 인한 발상의 전환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것. 물레기법으로 찻상을 만드는 작가는 국내에 여럿이 있다. 하지만 물레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두드리고 빚어 찻상을 만드는 작가는 거의 없었다.
파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차(茶) 애호가들 사이에서 찻상과 퇴수기가 분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천 작가는 또 다른 변화를 시도했다. 우선 기본도 불편하면 바꿔야 된다는 것이었다. 천 작가는 “각종 다구와 찻상을 만들려다 문득 ‘아는 만큼 보인다.’란 말이 마음을 두드렸다. 그래서 작정하고 1년 동안 차를 배우러 다녔다. 직접 사용하고 부딪히다보니 눈이 조금씩 열렸다. 그러다보니 불편한 점을 발견했다. 아무리 전통이고 기본이라지만, 결국 다구(茶具)는 사람이 쓰는 것이고 사람을 위한 것이다.”라며 찻상에 퇴수기로 통하는 구멍을 뚫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것이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찻상에 구멍을 뚫어 찻상 안쪽에 퇴수기를 집어넣었다. 쉬운 듯, 쉽지 않은 발상이었다. 더구나 물레가 아닌 판상기법으로 도자 찻상을 만들었다. 찻상 하나를 만드는데 보통 한 달은 족히 걸렸다. 점토질이 강한 산청 흙과 중국 경덕진 백자토를 혼합해 도판을 만들어 수분이 날아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재단된 도판과 받침대를 붙이고 찻상 중앙을 뚫어 문양을 냈다. 초벌구이와 재벌구이를 통해 완성된 천미선 표 ‘찻상’은 마침내 그렇게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매년 기억되는 한 가지를 만들어라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한 등반가에게 물었다. “저 높은 곳을 어떻게 오르십니까?” 그러자 등반가는 “한 걸음씩 걷다보면 정상에 오르게 됩니다.”라고 답했다.
천 작가에게는 매년 꿈을 하나씩 만든다. 그녀는 “살아가면서 매년 한 가지씩 기억에 남는 일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그렇게 한 가지씩 이루어가다보면, 종착역은 알 수 없지만 삶의 방향은 잡을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1년에 꼭 한 번씩은 여행을 떠난다. 이번 2년간의 인도여행은 생각보다는 길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층 더 삶이 무르익은 작품을 만들어 낼 것이다. 천 작가는 여행을 통해 어떤 영감을 얻는 것일까.
“딱히 어떤 영감을 한순간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오랜 여행을 하고 돌아왔을 때, 나도 모르게 빚어지는 작품 속에 여행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그렇게 내 안에 있던 풍경과 느낌 그리고 작은 깨달음들이 녹아 작품에 저절로 스며드는 것은 아닐까.”

어둠이 공방에 드릴 무렵, 일행은 삼겹살을 구웠다. 봄날이 절정인 저녁이었다. 삼겹살을 감싼 것은 하얀 목련꽃잎이었다. 거기에 민들레 잎, 소주쟁이, 냉이꽃, 앵두나무 꽃을 얹어 먹으니 입안에 봄이 활짝 피었다. 식사 후, 천작가가 직접 우려낸 유명한 다즐링 ‘홍차’로 입안을 행구니 세상 이보다 행복한 봄의 유희가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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