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가이드

정책주간지 K-공감
저는 왜 늘 잘해주고 상처받아야 하는 걸까요?
'신기율의 마음 상담소'


내담자 사연
저는 조금 늦은 나이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함께 입사한 동기가 세 명 있는데 가장 어린 동기와는 다섯 살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인지 어린 동기들을 친언니처럼 잘 보살펴주고 싶었습니다. 회사에서 만난 사이지만 개인적으로 좋은 언니가 되고 싶었어요. 외둥이로 자라서 그런 언니가 필요했던 적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가끔은 퇴근 후에 밥을 사주기도 하고 점심 식사 후에는 자주 커피나 후식을 사주며 고민 상담을 해준 적도 많습니다. 식당을 고르거나 메뉴를 선택할 때는 동생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게 하고 생일이나 기념일이 되면 신경 써서 선물을 해주고 교대근무를 대신 서준 적도 몇 번 있습니다. ‘뭘 도와주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행동들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다른 선배에게 동기들이 저를 ‘물주’로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 언니는 돈이 많아서 신세 져도 괜찮고 필요할 때 이용하면 된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좋은 언니’가 된 줄 알았는데 사실은 ‘호구’였던 거죠.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닙니다. 세 살 늦게 들어간 대학에서 나이 어린 동기들을 통해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친한 줄 알았는데 겉돌고 있었어요. 저는 왜 늘 잘해주고 상처받아야 하는 걸까요? (이혜진·가명, 33)





마음 상담소 답변
호의를 베풀 때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속도와 방향, 의도입니다.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호의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무의미한 참견이 되기 쉽습니다. 혜진 님이 겪었던 것처럼 잘해주고 상처받는 안타까운 장면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거죠. 먼저 관계에서의 속도는 화초를 키우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화분에 씨앗을 심어놓고 빨리 싹틔우고 싶은 마음에 매일 많은 물을 주면 어떻게 될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씨앗이 썩고 말겠지요. 화분을 잘 키우고 싶다면 먼저 씨앗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하고 그 특성에 맞게 때에 맞춰 물을 줘야 합니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 주고 싶을 때마다 성급하게 호의를 베푼다면 상대는 오히려 나를 자기과시가 심한 사람이나 간섭을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며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상대에게 잘해주고 싶더라도 상대가 내 호의를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 상대의 처지에서 살펴보며 속도에 맞게 호의를 베풀어야 합니다.
호의에도 속도·방향·의도가 있다
두 번째는 방향입니다. 호의를 베풀 때는 해주고 싶은 것보다 상대가 원하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도움을 받고 싶은 내용은 모두 다릅니다. 정신적인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사람도 있고 자신을 성장시킬 현실적인 기회나 물질적인 문제의 해결이 시급한 사람도 있습니다. 상대가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을 도와주고 배려할 때 상대는 내가 자신을 위해 돕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지금 무엇이 힘들고 어려운지, 어떻게 해야 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지 이해하고 공감해야 합니다. 이해와 공감을 위해서는 마음을 열고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친밀함을 키워가야 합니다. 내가 상대에게 잘해줘서 친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친해진 뒤에야 정말 잘해줄 수 있는 ‘앎’이 생길 수 있는 거죠. 해주고 싶은 것만 해주는 호의는 상대에게 불필요한 관심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할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의도입니다. 호의를 베풀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의도입니다. 무엇보다 호의를 베푸는 이유가 상대에게 특별한 목적을 이루거나 환심을 사려는 의도여서는 안됩니다. 만약 그 목적이 이뤄지지 않거나 내가 생각한 만큼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미워하는 마음이 쌓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해준 만큼 상대 역시 잘해줘야 한다는 기대 역시 하나의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잘해준 만큼 나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마음을 갖는 순간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서운함과 실망감이 쌓이게 됩니다. 잘해주는 데는 이유가 없어야 합니다. 굳이 찾자면 상대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나 ‘베풀었다는 마음 없이 베풀어야 한다’라는 말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혜진 님은 남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 착한 사람입니다. 착함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씨나 행동이 곱고 상냥하다’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곱고 상냥한 것일까요? 어원적 의미를 보면 온순하고 질서 있게 상대와 맞춰가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상대와 잘 지낼 수 있는 관계의 질서를 온순하게 찾아가는 것이 바로 ‘착하다’의 속뜻이죠. 혜진 님의 마음의 상처는 속도를 줄이지 못했던 성급함과 무엇을 잘해줘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던 방향성, 마음속 기대가 만들어낸 아픔이 아닐까 합니다. 상대가 나의 호의에 맞춰주길 원했던 성숙하지 못한 착함이 오히려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원인이 됐던 거죠. 이제부터라도 내가 잘해주고 싶은 사람에게 속도와 방향과 의도에 맞는 호의를 베푸세요. 그랬을 때 혜진 님의 배려심 넘치는 행동이 관계를 행복하게 해주는 성숙한 착함이 될 수 있습니다.
최종솔루션
“잘해주는 데는 이유가 없어야 합니다. 굳이 찾자면 상대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EDITOR 편집팀
K-공감
전화 : 044-203-3016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갈매로 388
본 칼럼니스트의 최근 글 더보기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