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가이드

반려동물과 이별을 생각해 보신적이 있나요?
''








2017년 4월, 그리고 계절의 여왕이 마침내 와서 푸르른 나뭇잎과, 반짝이는 햇살 뽐내듯이 터져 나오는 아카시아향기 가득한 숲 속의 정취와, 화려한 장미꽃의 축제들이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그러나 이 계절이 힘든 생명체들도 있습니다. 금년 4월은 유난히도 제게는 힘들고 우울한, 아직도 여정이 끝나지 않은 시간입니다. 춥고 긴 겨울을 지나고,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의 문턱은 건강하고, 젊은 생명들에게는 희망과 소생의 계절이지만, 사람나이로 7-80세에 육박하는 13-15살의 강아지와 고양이들 즉 노령동물에게는 힘겨운 계절입니다. 아마도, 겨우내 움츠린 생명의 기운이 새로운 계절은 맞이하기에는 미처 모자라서 촛불이 꺼지듯 힘이 다하는 거 같습니다.



유독 올해는 4월을 넘기지 못하고 별이 되어 떠나간 아이들이 많습니다. 각각의 사연을 따라 10여년 전 집 앞에 5마리의 강아지가 업둥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14살이 되는 지금껏 키워온 가족이 있습니다. 몸을 바들거리며 떠는 증상으로 한 달도 더 전에 검진을 하고는 항문주변에 종양이 있어서 컨디션 회복과 함께 수술을 하자고 약속했는데, 그리고는 자꾸 입맛도 떨어지고, 몸을 떨다 못해 기력도 감소하고 피부도 안 좋아집니다. 항문종양은 암일 수 있어서 큰 수술은 못하고, 종양을 자라게 하는 고환을 제거하는 수술과 함께 아이는 조금 좋아지는 것 같더니, 급기야, 설사도 하고, 열도 납니다. 설마 하면서 전염병 검사를 합니다. 홍역 양성. 허탈과 실망과 충격이 밀려옵니다. 나이 많은 아이들이어서 조심 한다는 것이 그만 기본예방접종과 면역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 않았는데, 그리고 몇 년 간 보기도 힘든 전염병이라니. 수의사 18년차에 홍역판정을 하기에 이렇게 두렵고, 마음 아픈 날은 처음이었습니다. 재앙의 시작, 그 아이를 비롯, 그 아이의 어미와 형제들까지 모두 감염되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분명하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장비를 챙기고, 면역요법을 위한 수혈준비를 하고 왕진을 갑니다. 10kg가 넘는 중간 크기의 강아지 5마리를 데리고 움직이는 건 힘든 일이기에, 가뿐한 몸 하나인 수의사가 왕진하는 것이 더 수월할 터.
결국 5마리 모두 홍역양성판정이 났고 그리고, 긴 여정은 시작되었습니다. 매일같이 왕진을 가서 아이들을 살피고, 면역처치를 하고, 항생제와 소염제, 진통제, 수액처치, 그러나, 고령의 나이에 들이닥친 바이러스성 전염병의 위력은 2살의 아이들이 겪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진단한지 40일이 지난 지금 5마리의 대가족이었던 강아지 가족은 이제 맏이 한 마리만 남았습니다. 그마저도 경련이 시작되는 듯 해서, 가족들은 마지막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헤어짐은 바로 안락사 입니다. “안락사” 감히 사람에게는 적용하기 두렵고, 어렵고, 망설임이 있는 용어 “존엄사” 와는 다른 용어입니다. 동물이기에 사용가능하고, 실제로 선택 되는 죽음입니다. 필자는 노령동물을 전담하기 전에는 용납하지 않았던 죽음입니다. 죽음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고, 탄생의 순간처럼 예측은 힘들지만, 삶의 한 과정이며, 누구든 원해서 태어나지 않듯이 죽기를 원하지는 않기에, 주인이라 하더라도, 죽음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힘듦과 고통과, 아픔을 느끼는 반려동물은 보면서, 그런 아이들을 돌보는 보호자 분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제가 강요하거나, 설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가까워지는 순간을 조금씩 예측하면서, “Well Dying”, “아름다운 이별” 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수명의 연장도 중요하지만 남은 시간의 질, 그 순간을 모아서 보호자와 반려동물이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맞이하도록 돕는 것, 그 것이 제가 할 일이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경 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노령동물의 질병을 돌보는 것이 부담이 되고, 힘든 것 때문에 할 수 없이 안락사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보호자님들의 안락사 선택의 가장 큰 이유는 “고통이 있느냐” 입니다. 치료가능성이 낮은 말기 신부전과 전이가 되어 호흡도 곤란한 말기 암환자의 경우, 보호자를 알아 보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는 혼수상태와 발작을 반복하는 환자, 거의 이러한 경우에 마지막으로 고심을 거듭한 끝에 선택하시는 결정을 감히 설득할 수 없기에 노령동물의 마지막에 선택되기도 하는 죽음이 안락사 입니다.



10살이 넘은 반려동물들은 이제 아주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아니, 10살이 나이가 많다고 말하기도 약간 부끄럽습니다. 요즘은 평균 13-15살 정도는 되어야 노령동물이라고 알아봐 주니까요. 그래서 7살이 넘으면 노령기를 준비하시라고 합니다. 병원과 수의사를 지정해두고, 관리 받으시라고. 그래야 노령에 발생하는 질병을 관리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건강할 때 사람처럼 건강보험 하나는 들어두시기를 농담 반 진담 반 권장 드립니다. 실제로, 경제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경우는 없도록 하고 있는데, 동물은 아직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동물병원 진료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강아지가 노령이면 사람보다 노화 속도는 빠르기 때문에, 더 빨리 질병이 진행되면 손을 쓰기 힘들어 지기도 하니, 미리미리 대책을 세워두어야 좀 더 덜 힘든 노후를 보내고, 급기야, 마지막 헤어짐도 덜 아프고 덜 아쉽습니다.
3년 사이 차례 차례 3마리를 떠나 보내신 어머니 같은 보호자님은, 그 아이들을 돌보고 간병하면서 당신도 우울감과 스트레스로 병원을 다니실 정도였습니다. 단지 힘들어서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아프고 낫고 죽어서 떠나 보내는 그 모든 과정이 그렇게 힘들고 아플 수가 없어서, 그것도 매번 반복되는 것이 너무 아프다고 합니다. “펫로스” 반려동물을 떠나 보낸 상실감으로 보호자들이 느끼는 감정적, 사회적, 신체적 모든 증상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 또한 수의사가 보호자를 대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상황입니다. 동물이 아닌 보호자의 마음과 몸의 병이 생길 수 도 있는 “펫로스 증후군”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 이것도 수의사의 일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지요. 동물을 치료하여 사람을 행복하도록 하는 것, 동물과 사람이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수의사와 동물병원의 존재 이유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려동물과의 헤어짐. 죽음은 공존한다 했습니다.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어떻게 후회 없고, 아름답고, 편안하게 맞이할 것인가? 누구도 죽음의 방법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에 대해 준비하고, 생각해보는 것은 노령기의 반려동물을 둔 보호자님들께는 한 번쯤 생각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생각하고 싶지 않겠지만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머나먼 일이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 가족들이 아픔과 슬픔이 너무 커서, 일상적인 생활이 힘들고, 몸도 마음도 약해지고, 급기야, 자살까지 하는 일도 발생한다면 그건 떠나가는 아이들이 원하는 이별이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해주고, 포기하지 않고 책임을 다하고, 사랑해 주기를 아끼지 않았던 보호자님들의 그 마음을 떠나가는 아이들은 안고 갑니다. 그래서 많이 사랑 받은 기억을 가지고 떠나도록. 헤어짐을 슬퍼할 시간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애도의 시간이 흐르고, 위로와 회복을 겪고 난 보호자님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반려동물 친구들이 바라는 것일 거라고, 많은 이별을 지켜본, 수의사는 감히 생각합니다.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