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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지극한 정성 속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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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년 이른 봄. 세자로 책봉된 영조의 둘째 아들 선(사도세자)은 뒤주 속에 갇혔다. 스스로 자결할 것을 명한 영조의 뜻을 거역하자 서인으로 폐하고 뒤주 속에 가둔 것이다.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던 선은 8일 만에 죽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그것도 왕권을 물려받을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모략과 당파싸움으로 얼룩진 조선 구중궁궐의 암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과 정조가 묻힌 건릉을 합쳐 융건릉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융릉은 당파싸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아비로부터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묘다. 본래 경기도 양주군 배웅산에 있던 것을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면서 그 해에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현륭원이라 했다.
정조는 생전에 하지 못한 효를 다하려는 마음으로 현릉원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야트막한 구릉은 숲을 우거지게 하고 온종일 볕이 드는 자리에 부모를 모셨다. 릉 주변에는 사실감이 돋보이는 문인석과 무인석을 세웠고, 릉을 한 바퀴 두른 석축 또한 꽃문양이 화려한 조각으로 수놓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릉원에서 오리 떨어진 곳에 절 하나를 지어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게 했으니 그게 바로 오늘의 용주사다.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는 죽어서 아버지 곁에 있기를 소망했고, 그의 유언대로 융릉 곁에 묻혔다. 그 두 개의 왕릉을 합쳐 융건릉, 혹은 화산릉이라고 부른다.


융건릉은 화성8경에서도 첫손에 드는 제 1경

융건릉은 화성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두 개의 왕릉과, 왕릉을 감싼 기품 있는 솔숲은 역사의 향기가 진동한다. 2009년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 특히, 두 개의 왕릉을 찾아가는 길은 사색과 산책의 즐거움이 넘치는 오솔길이다. 싱그러운 솔숲 사이로 난, 빗질이 잘 된 오솔길을 걸으면 목을 탁 쏘는 맑은 공기가 느껴진다. 넉넉한 걸음으로 1시간이면 두 릉을 돌아볼 수 있어 발길도 가볍다. 매표소를 들어서면 곧장 갈림길이 나온다. 건릉은 왼쪽, 융릉은 오른쪽이다. 어느 쪽으로 돌아도 상관없다. 두 릉 사이에는 솔숲과 참나무숲 사이로 난 여러 갈래의 길이 있어 원하는 길을 선택하면 된다. 왼쪽 건릉으로 방향을 틀면 기품 있는 소나무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다. 그 사이로 난 길은 여럿이 함께 걸어도 좋은 황톳길이다. 가을에도 빗질이 곱게 되어 있어 걷는 맛이 좋다.



길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곳부터 솔숲은 뒤로 물러나고 참나무숲이 다가선다. 여름에는 싱그러운 그늘을, 가을에는 수북한 낙엽이 쌓이는 길이다. 그 길을 따라 몇 걸음 떼지 않으면 건릉이다. 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이다. 릉은 첫눈에도 아늑하다. 산인지 언덕인지 모를 야트막한 둔덕에 릉이 들어섰다. 릉이 들어선 자리만으로도 왕의 권위를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융릉으로 가는 둘레길은 건릉에서 돌아 나오다 오른쪽으로 빠진다. 릉 초입의 홍살문에서 50m쯤 내려오면 오른쪽에 ‘융릉 산책로’라 적힌 이정표가 있다. 그 길로 들어서면 건릉과 융릉을 감싸고 돈 산의 능선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둘레길은 길의 폭이 좁아진다. 둘이 나란히 걷기에 딱 좋다. 그래서 더욱 걷는 맛이 산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펼쳐진 호젓한 둘레길 산책

갈림길에서 150m쯤 가면 능선에 올라선다. 숲의 주인은 상수리나무에서 소나무로 수시로 바뀐다. 능선에서 만나는 소나무는 융건릉으로 드는 초입에 늘어선 기품이 있는 소나무와는 거리가 멀다. 제멋대로 뒤틀리면서 자란 것이 대부분이다. 그 솔숲에 조그만 돌탑이 서 있다. 벤치도 있다. 벤치는 오솔길 중간중간에 있어 다리쉼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능선을 따라 가는 길도 편안하기만 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다. 가벼운 산책, 그 이상 힘을 써야 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오솔길은 융릉에 닿기 전에 두 번 길이 나뉜다. 두 길 모두 건릉과 융릉 사이로 이어진다. 산책을 짧게 끝내고 싶다면 갈림길에서 내려서면 된다.
건릉을 출발해 30분이면 융릉 입구까지 갈 수 있다. 여전히 호젓함이 있는 길은 걷는 즐거움을 준다. 융릉을 코앞에 두면 다시 활엽수 거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그 숲을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융릉이 있다. 융릉 역시 건릉처럼 누가 봐도 최고의 명당임에 틀림없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마련한 자리이니 좋을 수밖에. 왕릉을 지키고 선 문인석과 무인석은 멀리서 봐도 위엄이 느껴진다. 융릉에서 융건릉 입구까지는 400m 거리. 다시 기품 있는 소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걷는 길이다.




가는 길
둘레길을 다 합쳐도 3km가 조금 넘어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특히, 봄가을의 주말은 나들이객이 겹쳐 조금 혼잡하다. 그나마 융건릉을 잇는 둘레길이 호젓한 편. 편한 운동화면 충분하다. 융릉과 건릉 입구에 식수대도 있다. 봄가을로는 숲에서 도시락을 먹는 재미가 있다. 융건릉을 잇는 둘레길은 산불방지기간에는 입장이 불허된다. 서울에서는 과천∼의왕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게 좋다. 봉담IC로 나와 84번 군도를 따라 6km가면 된다. 서해안고속도로는 발안IC, 경부고속도로는 봉담~동탄고속도로와 평택~화성고속도로를 이용, 안녕IC로 나온다. 대중교통은 지하철 1호선 수원역에서 내려 24번, 46번, 46-1번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40분 소요. 신영통이나 영통, 봉담에서는 34, 34-1번 버스가 운행된다.

별미
융건릉 주변은 수원 왕갈비 맛을 살린 집들이 여럿 있다. 수원 왕갈비는 갈비를 한 뼘도 넘게 큼지막하게 잘라 양념을 하지 않은 채 숯불에 구워 먹는다. 밤새 고아서 내놓는 갈비탕도 시원하다.

숙박
융건릉은 수도권에서 당일치기로 충분한 곳이다. 주변에 마땅한 숙박시설도 없다. 수원 신도시인 영통지구에는 호텔을 비롯해 최근에 개장한 모텔 등이 많다.

볼거리
융건릉과 이웃한 용주사는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지은 절이다. 팔도에서 거둬들인 8만 7000냥의 성금으로 145칸의 규모의 대찰로 지었다. 국보로 지정된 동종(국보 120호)와 불교경전에 나온 효성을 우리말로 풀어 새긴 부모은중경 비석, 절 입구에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한문 각자를 새겨 넣은 표석 등 볼거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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