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도동서원에서
'글. 이정연'

봄이 되면 늘 도동서원의 모란꽃 안부가 궁금해지곤 했다. 언젠가 우연히 도동서원에 들른 적이 있는데 뒤뜰에 가보고 깜짝 놀랐다. 광주리만 한 모란꽃이 뜰 가득 피었는데 벌 나비가 날아들어 잉잉거리는 바람에 마치 벌과 나비의 전쟁터에 온 것 같았다. 열기와 함께 훅 끼쳐오는 모란 향기에 현기증이 났다. 그 후로 마치 꿈속에 본 듯 그 풍경이 자꾸 생각나서 봄이 되면 잊지 않고 가보아야지 했는데 번번이 시기를 놓쳤다. 올해도 개화 시기를 놓쳐 버렸지만, 행여나 몇 송이라도 남았을까 새벽을 달려 가 보았다.
대구에서 도동서원에 가려면 구지면 징리 쪽으로 먼 길 돌아서 가든지 아니면 가깝지만 험한 길 다람재를 넘어가야 한다. 내비게이션이 묻지도 않고 다람재로 안내한다. 다람재 정자에서 보면 도동서원 전체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옛날 어린 유생들은 쌀섬이나 진 머슴과 함께 이 재를 울면서 넘었으리라. 서슬 퍼런 아버지의 담뱃대 호령에 공부하려고 집을 떠나왔지만 차마 이 고개를 내려가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앞은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고 뒤는 까마득한 다람재, 구지쪽으로 돌아서 가는 길은 몇 날이 걸릴지 모르는 길이다. 봄이면 두고 온 고향 뜰과 어머니가 그립다. 공부는 진척이 없는데 설상가상 모란꽃 향기는 문풍지 사이로 스미고 뒷산에선 소쩍새가 눈치도 없이 운다. 아무리 책을 펴고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라고 목청을 가다듬어도 옥분 사모지정 단장(玉粉 思慕之精 斷腸)으로 읽히며 학난성( 成)이다.



참 이상하다. 공부하는 유생들 가슴 울렁거리게 서원 뒤뜰에 왜 하필 모란을 심었을까. 봄,밤 바람은 부드럽고 달빛에 모란은 처절하도록 붉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뜻을 짐작하기 힘들다. 처음 서원을 세울 때는 그렇지 않았겠지. 그런데 안동 도산서원에 가도 공부방 박약재 홍의재에서 진도문을 열면 경사면을 따라 모란이 줄지어 피어있다. 아무래도 훈장님이 크게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면서 어린 유생들을 시험에 들게 한 것은 아닌지. 그럼 서원에 모란을 못 심는다면 어디에 심으면 좋겠소?
분명 그렇게 딴죽 걸 줄 알았다. 모란은 모름지기 기방 앞마당에나 어울림 직하다. 반쯤 열어젖힌 기방 대문 사이로 온 마당이 환한데 그 뒤로 모란보다 붉은 비단 치마를 입은 여인들이 오락가락한다. 아무리 점잖은 선비라도 눈길 안 주고는 못 배기는데 그 한눈파는 틈에 기방에서 시중들던 아이들이 잽싸게 나와 말고삐를 잡아챈다. 모란꽃밭 옆 평상에는 동이 째 술이 나오고 유감없이 벙글은 모란에 눈길을 준 채 매향을 향해 ‘저 모란보다는 네가 더 곱지!’ 하면서 짐짓 허리를 끌어당기는 선비 뭐 그래야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꽃 자리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모란은 서원에 있기에는 너무 화려한 꽃이다.
아무렇거나 나는 지지부진 남은 모란 한 송이를 두고 사진 찍느라 씨름하는데 한훤당 초로의 종손께선 이른 아침부터 예초기를 지고 풀 베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계셨다. 저러다 탈수증 생기는 건 아닐까 봐 마음 같아서는 예초기를 뺏어 들쳐 메고 싶다. 한 가문의 권위와 책임을 지키는 모습이 저렇듯 힘든 것이구나 싶어 가슴이 찡하다. 무겁고 힘들다고 함부로 내려놓을 수도 없는 종손 종부의 책임이 그대로 내게 전해져 온다.



모란이 없으니 다른 사진 거리가 없나 둘러본다. 돌계단 난간의 꽃 조각이 정겹다. 나는 작정하고 만든 예술품보다 건축이나 가재도구에 실용성을 해치지 않는 정도의 멋을 부린 소박한 예술품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재봉용 자에 몇 송이 꽃을 음각한 것이나 곤충이 새겨진 앙증맞은 떡살, 작디작은 꽃무늬가 새겨진 어머니의 비녀 같은 것을 아낀다. 동고동락 주인과 함께하면서 닳아 체취가 묻고 마침내는 영혼까지 스며있는 물건은 긴 세월을 건너 내게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중정당 석축의 용머리 조각도 눈여겨 볼만하다. 낙동강 범람으로 인해 수해를 막기 위함이라는데 자세히 보니 세 두는 좀 섬세하지만 어쩐지 가벼운 느낌이 드는데 한 두는 부드럽고 유순한 모습이라 물어보니 도난당했다 찾아왔는데 한 두만 진품이고 나머지 세 두는 새로 만들어 붙였으며 진품은 따로 보관 중이라고 한다. 계단 앞의 거북 머리는 순박하고 석축의 거북과 꽃은 단순하면서 정겹다. 건축주의 안녕을 비는 마음을 정 끝에 담아 하나하나 쪼았을 조각들 부드럽고 따뜻한 석공의 마음이 읽힌다면 비약일까.
저 조각을 보시고 한훤당께서는 빙긋이 웃으며 '수고하셨네!' 하며 약속한 석공임보다 후하게 지불하셨으리라. 계단 난간의 왼쪽도 부서져서 마음이 아팠는데 남의 집 석축의 조각품도 훔쳐 가는 사람이 있구나! 안타깝다. 또 하나 잊지 못할 것은 환주문, 문 가운데 작은 돌 조각이 하나 있다. 늘 나다니는 문 가운데 돌조각이라니 자칫 이해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환주문을 열면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진다. 그 조각은 급히 가다 넘어지지 말고 발아래를 보고 조심조심 다니라는 경고문이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아직 서원에 왜 모란을 심는지 알지 못한다. 공부는 열심히 하되 봄 여름 가을 겨울 세월 가는 이치와 화무십일홍을 알려주려는 뜻인가. 아니면 공부하느라 지친 시간 속에 잠깐 아름다운 꽃의 순간을 유생들의 기억 속에 아름다이 남겨 두고 싶은 스승님의 온정인가. 그도 아니면 나처럼, 봄이 되면 서원을 그리는 마음이 모란꽃 빛처럼 사무치도록, 검붉은 꽃이 필 씨앗을 뒤뜰에 묻은 건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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