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1센티 낮추기
'글. 한지황'

캐주얼은 물론 정장에도 잘 어울린다는 운동화 슬립온이 유행하고 있다. 딱딱한 구두에 갇혀있던 발은 쿠션감이 월등하고 유연한 슬립온의 등장으로 해방감을 맛보게 되었다. 편한 신발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키가 작은 편인 나에게는 신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그림의 떡이었다. 누구보다도 유행에 민감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점점 거리를 장악하며 활보하는 슬립온들을 보고 있자니 높은 굽을 선호하던 내 마음에도 서서히 변화의 파도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유행이 달콤한 목소리로 너도 신어봐 하는 거였다. 더 이상 유혹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나보다도 훨씬 높은 굽을 고수하던 친구마저 당당하게 슬립온을 신고 나타난 것도 자극이 되었다.
슬립온을 사러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성스런 옷차림을 즐기는 나에게 어울리고 내 개성을 살려줄만한 슬립온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슬슬 포기를 할 즈음 우연히 들어간 백화점에 내 시선을 사로잡은 슬립온이 있었다. 검은 벨벳에 진주와 구슬이 아름다운 무늬로 발등부분을 장식하고 있어 레이스를 선호하는 내 드레스 코드에 안성맞춤이었다.



슬립온을 신고 처음 외출하던 날, 평소처럼 빠른 걸음으로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나는 신세계를 맛보았다. 뛰어보니 날아갈 듯 가벼웠다. 슬립온은 높은 굽에 얽매어 살던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키가 작아 보인다는 사실은 내 몸이 편안해졌다는 사실 앞에서 존재조차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다.
무릎이 아프다는 하소연과 함께 의상 컨셉과는 상관없이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언제까지 높은 굽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을 해왔던 터였다. 무릎이 아파오기 전에 미리부터 낮은 굽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망설임과 함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까 두려우면서도 멋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차였다.
유행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대세를 따라가면서 슬쩍 나는 실용주의로 갈아타기를 한 셈이다. 유행이 바뀌어 높은 굽의 구두를 신는 사람이 많아지더라도 나와는 무관한 일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이미 신발장을 점령하고 있는 각양각색의 구두와 부츠들이 눈에 어른거리기기 시작했다. 몇 번 신지 않아 반짝거리는 내 구두들. 누구는 싹 다 버렸다고 하지만 옷도 어떻게든 코디하여 웬만큼 낡아져야 버리는 습성이 배어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며칠을 곰곰이 궁리했다. 저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불현듯 집 앞 구두수선 아저씨가 떠올랐다. 십 년 이상 단골인 아저씨의 손재주라면 내 구두들에 요술을 부려 편한 구두로 탈바꿈해줄 수 있지 않을까? 우선 부츠 두 켤레를 들고 아저씨를 찾아갔다. 화이트 색상에 리본까지 달린 화려함이 부담스러워 두 번 밖에 신지 않았던 롱부츠를 보더니 아저씨는 그다지 높은 굽은 아닌데 앞부분이 너무 납작하니 쿠션 좋은 고무창을 붙이면 되겠다고 했다. 앞부분은 고무창이 있으나 굽이 높은 검정 부츠는 굽을 1센티만 줄여도 발이 덜 쏠리기 때문에 훨씬 편하다고 했다.
수선이 다된 부츠를 신어보니 1센티만 낮추었는데도 훨씬 편했다. 집에 오자마자 남아있는 부츠들을 가방에 넣었다. 1센티만 줄여도 이렇게 편해지는 것을 그동안 힘들게 다녔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다.
비단 구두뿐일까? 자존심도 1센티만 줄이면 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일단 남편과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그동안 꼿꼿하게 버텨왔던 자존심을 1센티만 낮춘다면 남편에 대해 훨씬 너그러워질 수 있겠지. 이왕 줄이는 김에 욕망도 줄여야겠다. 눈높이를 1센티만 낮추어도 물질에 대한 욕심, 더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조금은 편안해지겠지.
1센티 아니 줄일 수 만 있다면 2센티까지 최대한 굽을 줄여달라고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구두수선 가게를 찾아가는 길, 나에게 준 선물의 실체를 아저씨는 전혀 모를 것이라는 생각에 내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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