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육개장을 먹는 시간
'글. 박종희'

마치 가족 모임이라도 하는 양 모여드는 친척들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역력하다. 오늘 아침에도 전화 통화했다는 큰고모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받았으니 왜 아니겠는가. 급하게 차려진 빈소에는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모임에 갔다가 허둥지둥 달려온 둘째 고모가 쓰러질 듯 통곡을 한다. 부산에 살아 더디게 도착한 둘째 딸도 영정 사진을 끌어안고 쓰러졌다.
사연 없는 죽음이 없다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을까. 어이없고 허망하게 돌아가신 고모 이야기하느라 앞에 놓인 육개장이 식어 기름이 뜬다.
올해 여든넷인 고모는 고모부가 돌아가시고 대궐같이 지은 전원주택에서 아들하고 단둘이 지냈다. 워낙 성격이 깔끔하고 바지런하신 고모네 집 앞마당은 지푸라기 하나 없이 깔밋했다. 돌아가시던 날도 쓰레기를 주워 태우다가 변을 당했다. 지은 지 오래된 집이라 불은 순식간에 벽으로 옮겨붙었다.
새우등이 되도록 일해 장만한 집이라 고모는 집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으셨던 것 같다. 당신 몸에 불붙는 것은 생각도 안 하고 불을 끄느라 불구덩이에 뛰어들었다. 큰불이 아니라 다행히 불은 껐지만, 연로하신 고모는 연기에 질식해 돌아가셨다.
고모 혼자 계시는 날이 많다고 아들이 달아놓은 CCTV가 자식처럼 고모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하러 갔던 아들이 돌아와 CCTV 영상을 보고서야 고인의 죽음을 확인했으니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입관식을 마치고서 여자 사촌들이 모여앉았다. 나이가 같아 어릴 때는 친구처럼 지냈는데 결혼하고 서로 멀리 살다 보니 큰일이 있어야만 이렇게 얼굴을 보게 된다.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지 못한 죄스러움이 씀벅씀벅 고개를 들었다. 인정 많고 자상해 조카들한테도 잘했던 고모를 추억하며 눈물을 찍어냈다. “서로 연락도 하고 지내야 하는데 늘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되네.” 이틀 만에 눈에 띄게 수척해진 고종사촌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랬다. 동갑내기 사촌이지만 결혼하고 30년 동안 서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오늘같이 집안에 큰일 있을 때만 만나서 그런지 말이 중간에서 뚝뚝 끊어졌다. 의례적인 말 한마디씩 건네고 나니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누가 연락하는지 평소 왕래가 없던 사람도 장례식장에 다녀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고모의 빈소에도 밤이 이슥하도록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육개장을 먹고 일어선 상에 다시 육개장이 차려지는 것을 보니 3년 전 친정아버지 돌아가셨을 때가 생각났다. 어떻게 알았는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동창들이 찾아와 주었다. 중학교 동창들이니 딱 40년 만이었다. 서로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아 애써 추억을 떠올리는 장례식장이 꼭 동창회 자리 같았다.
작정한 듯 추억을 들춰내는 여자 동창들의 걸걸한 수다는 40년 전 이야기로 풍성했다. 얼근하게 취기 오른 남자 동창들의 술안주는 정치 이야기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갈아탔다. 50대 중반을 넘겼으니 대부분 직장에서 은퇴했거나 퇴직을 앞둔 허리가 잘릴 나이였기 때문이리라. 현실을 부정하듯 식어 비틀어진 고사리 줄기를 잘근잘근 씹는 그들에게 뜨거운 육개장을 내어다 줄 때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참 많이 미안해지던 자리이기도 했다.

40년 만에 친정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만난 동창도 큰고모 딸처럼 쓸쓸한 말을 했었다. “우리는 이렇게 육개장을 먹을 때만 만나게 되는구나. 다음에는 또 누구의 육개장을 먹으며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낯설게 들리던 그 말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 짙어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예순을 눈앞에 두었어도 사는 게 뭔지 당최 모르겠다. 무에 그리 장한 일을 하고 산다고 서로 연락도 못 하고 사는 건지. 밥 한번 먹자고 나누는 말이 인사치레가 된 지도 오래다. 아니, 야박하게 육개장을 먹는 것으로 밥 약속을 대신한 적도 있었지 싶다.
환하게 웃으시는 고모의 젊은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인생은 육개장을 먹기 위해 사는 것이라고 하던 동창의 말이 다시 가슴에 박힌다. 사는 게 팍팍해 잊고 살다가 인생처럼 쓴 소주와 시뻘건 육개장을 먹을 때만 친구들 얼굴을 볼 수 있다고 넋두리하던 그 친구는 오늘 안녕한지.
먹고 사느라 지쳐 장례식장에서야 안부를 묻는 가난한 인생들. 삶에 외면당해 서럽고 외로운 사람들과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할 수 있는 육개장이 있어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뜨겁고 얼큰한 국물 한 숟가락이 상처로 얼룩진 이들의 속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어 얼마나 행심한지. 그런 생각이 드니 앞으로 장례식장이 아닌 곳에서는 육개장을 먹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시간, 울다가 지친 상주들이 화분처럼 벽에 기대있다. 도우미들이 모두 퇴근해버린 식당도 조용하다. 오늘 밤이 지나면 이 자리에는 또, 어떤 망인을 위로하는 육개장들이 웅성거릴까.
안타깝게 뒷모습을 응시하며 서로를 배웅하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무심하게 살다 보면 어느 날 또 육개장 먹으러 이곳을 찾을 날이 있겠지. 마치 육개장 먹을 날을 기다리며 살았던 것처럼 우리는 목구멍 깊숙이 뜨거운 국물을 밀어 넣으며 습관처럼 오늘 우리가 먹었던 육개장에 관해서 이야기하리라.
“너무 오래 힘들어하지는 마라. 슬픈 일이지만, 이렇게 장례식장에서라도 볼 수 있으니 좋지 않니?” 인생처럼 쓴 소주 한잔에 거나해진 동창이 남긴 한마디가 이렇게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줄이야. 시뻘겋고 걸쭉한 육개장이 이렇게 가슴을 후벼팔 줄이야.

EDITOR AE류정미
해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