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콩트>
노상 방뇨
'글. 박순철'

햇볕이 자글자글 내리쬐는 아스팔트 도로가 절절 끓는다. 삼겹살을 얹으면 구워질 것 같다. 아침 일찍 우암산에 올라갔다가 어린이 회관 쪽으로 내려오는 소갈 씨의 등이 흠뻑 젖어있다. 이제 퇴직 후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할 일이 없으니 그저 아침 먹으면 우암산 올라가는 게 일과가 되었다.
우암산 체육공원에는 운동기구가 많아서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운동 할 수 있으니 청주 시민은 축복받은 사람임이 틀림없다. 옛 직장 동료 만나서 그간 지나온 이야기 하다 보니 어느새 한나절이 다 되어간다. 점심이나 같이하자는 청을 뿌리치고 내려오는 모습이 아직은 건강해 보이지만, 아니다.
한때는 무박 2일로 설악산 대청봉을 넘고도 끄떡없던 체력이 이제 우암산을 거쳐 산성까지 가는 게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던 사람이 종일 사랑방이나 지키며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다. 꼭 그래서일까만 우암산에 올라가면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괜히 이것저것 집적거려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시간도 제법 쉬 흘러간다. 그러다 보니 이 뙤약볕을 마주하는 게 일상이 되었고 그리 무섭지도 않다.
어린이 회관 앞에서 버스를 타면 집 앞에서 내리지만, 더위를 무릅쓰고 걷기로 했다.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쓴 선글라스와 챙모자를 눌러써서 우스꽝스럽고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들지만, 그런 것에 구애받을 소갈 씨가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지금껏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고 고집하는 그를 누가 말리랴.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오랜 생활 절약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탓에 승용차는 먼 길 갈 때나 급한 일이 아니면 운행하지 않는 게 소갈 씨의 철칙이다. 그 이면에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지하자원을 원망하는 마음도 담겨있다. 더위 탓인지 걸어 다니는 사람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터벅터벅 걷는 발걸음이 더디기만 하다. 우암산 올라갈 때 배낭에 생수 한 병 넣어 간 것은 벌써 바닥을 보였다. 어린이 회관이나 박물관에 들어가면 물을 얻어 마실 수도 있겠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소갈 씨 옆으로 개인택시 한 대가 쌩하고 지나가더니 얼마 가지 않아 길가 창고 옆에 멈추어 섰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운전사가 옥수수밭 울타리로 가더니 바지 지퍼를 내리는 것 같다. 이런! 소갈 씨의 눈이 쪼그매진다. 마치 풀잎에 앉은 잠자리라도 잡으려는 듯 살금살금 다가가는 그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지금 노상 방뇨를 하고 계십니다. 노상 방뇨하면 벌금 일십만 원 또는 구류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계시겠지요. 청풍명월 양반의 고장에서 노상 방뇨라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선생님의 모습은 모두 여기에 저장되었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근엄한 목소리가 나올까.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우렁찬 목소리다. 소갈 씨는 손에 든 핸드폰도 흔들어 보인다. 엉거주춤 서 있던 사내가 황급히 상체만 뒤로 돌려 바라보는 얼굴에는 낭패스러움이 가득 묻어있다.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에서 그것도 노상 방뇨하다가 적발된 자신의 처지가 몹시 후회스러운 듯했다.
“저, 아직 볼일은 보지 않았는데요?”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조금 전 사내의 모습은 노상 방뇨가 분명했었는데 반박하는 모습이 만만찮다.
“그래요. 그럼 볼일마저 보고 나오세요.”
“아니요. 당신 때문에 요의가 다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내 휴대전화기에 찍힌 선생님의 모습은 노상 방뇨가 분명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아직 볼일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그럼 못 본 것으로 할 테니까 막걸릿값이나 좀 주시지요?”
“뭐요? 이 순 사기꾼 아냐?”
“그래, 나 사기꾼이다.”
소갈 씨가 천천히 사내 앞으로 다가가며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그다음 마스크까지 벗고 나니까 본래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인다. 소변을 보려던 사내도 무척 놀라는 눈치이다.
“아니! 너?”
“그래! 나야, 하하하”
“야, 나인지 어떻게 알았어. 내 차 번호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래. 충북 XX가 7XXX”
“너 머리 좋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기억할 줄은 몰랐다.”
“무슨, 오랜만이다. 영업은 잘되고?”
“웬걸, 코로나19 때문에 사람이 돌아다녀야 타든지 말든지 할 텐데 도무지 손님이 없어 이짓도 못 해 먹겠다.”
“그렇겠다. 제수씨도 잘 계시고?”
“야, 제수씨가 아니라 형수님이시다.”
“아무렇게나 해라. 언제 우리가 그런 것 따졌니? 하하하”
조금 전 소변을 보려고 하던 사람은 고향 친구 동학이다. 당시는 가난하지 않은 집이 거의 없을 정도로 헐벗고 굶주리는 처지였다. 잘 산다고 하는 친구는 면 소재지에 사는 고작 네댓 명 정도에 불과했었다.
동학 씨와 소갈 씨는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초등학교에 다녔다. 지금처럼 포장된 도로가 아니어서 버스나 자동차가 지나가면 뽀얀 먼지가 화산재처럼 날리고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무엇이 즐거운지 깔깔거리며 뛰어다니기도 하고 길가에 달린 딸기를 따 먹기도 했다. 소갈 씨네 집보다는 동학 씨네 집이 조금 더 잘 살았던 것 같다. 그래 봐야 흔히 하는 말로 오십보백보에 불과했을 것이지만.
“그래 너는 지금 뭐 하냐?”
동학 씨가 궁금증을 나타낸다. 만나지 못한지 한 7~8년 되나 보다. 이곳 청주에는 고향 친구가 10여 명 있지만 모두 개성이 강하고 바쁘다 보니 한번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제 뭘 하겠어. 직장 퇴직하고 나니 써 주는 곳이 없다.”
“그래서 노상 방뇨하는 사람 적발해서 술 사라고 하는 사기 협박꾼이 되었냐?”
말은 좀 심하다 싶었지만, 전혀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야! 그래도 나는 협박이나 했지 너처럼 밀고하지는 않았다.”
“뭐! 밀고?”
“초등학교 3학년 때 내가 화단에 오줌 눈 거 네가 담임 선생님한테 일러바쳤잖아 그래서 나는 종아리에 멍이 들도록 회초리를 맞았고.”
“너 정말 머리 좋다. 나는 전혀 기억에 없는데….”
“아무려면 어떠냐. 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어디 가서 시원한 냉면이나 먹자?”
“그거 좋지, 내가 노상 방뇨하다가 적발되었으니 오늘 점심은 내가 살게?”
“아니야. 너는 미수에 그쳤으니 내가 살게.”
서로 점심을 사겠다며 희희낙락하는 모습은 노란 병아리 그림이 그려진 가방을 둘러멘 유치원 어린이들처럼 정다워 보였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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