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콩트>
10억대 거지
'글. 박순철'

“형님 일찍 나왔어요?”
“아니야 조금 전에 왔어.”
“잘 지내셨죠?”
“그럼, 사장님 여기 막걸리 두 병하고 순대 한 접시 줘요.”
서울 도심에 이런 순댓집이 있다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허름해서 그런지 다른 손님은 없다. 요즘 더위도 더위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줄어들어서 더 그런가 보다. 그 순댓집에 중년이 한참 지난 두 남자가 마주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형님! 요새 일 다니신다며요?”
“응, 그려.”
“할만해요?”
“뭐, 일이랄 게 있어. 늙은이들 일이랍시고 쪼매 시켜놓고 몇 푼 주는 거지.”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알았네. 오늘 술값 내가 낼 테니 걱정하지 말고 먹기나 하게.”
“네.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자네 식당 문 닫았다며?”
“그렇습니다. 형님.”
“왜?”
“장사가 되어야지요. 임대료도 못 내고 있습니다.”
“저런!”



60이 좀 넘어 보이는 사내와 그보다 대여섯 살 많아 보이는 사내는 고향 선후배 사이다. 아직 술을 마시기에는 이른 시각임에도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불그스레한 얼굴로 시시콜콜 대화를 이어간다.
형님이라 불리는 사내는 개인택시를 했었다. 눈도 침침하고 건강도 전만 못해서 저 지난해 개인택시를 팔고 놀다가 올봄부터 초등학교 아이들이 안전하게 건널목을 건널 수 있도록 등?하교 시간에만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학생들 수업이 온라인으로 변경되자 그 일도 쉬게 된 상태였다.
막걸리 두 병이 바닥을 보이자 한 병을 더 시킨다. 사내들의 체력이 좋은지 그리 취해 보이지는 않는다.
“형님! 아파트값 많이 올랐지요?”
“정부가 세종시로 이사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면서 조금 주춤하는 것 같아.”
“말이 그렇지, 어디 쉽겠어요. 그리고 그 말이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하긴, 고위 공직자들은 그런 소문이 떠돌아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어.”
“나도 후회가 막심해요. 아파트 팔지 말고 가지고 있었으면 이 고생 하지 않았을 텐데요. 괜히 장사 시작했다가 아파트만 날리게 생겼어요.”
“그려, 지금까지 팔지 말고 가지고 있었으면 식당 해서 번 돈 보다 더 많이 올랐을 거야.”
“맞아요. 후회가 막심합니다.”
“전에는 1년에 두 번 나오는 재산세가 천만 원 정도였는데, 이제 한번 나오는 재산세가 천만 원이 넘어. 개인택시 그만두니까 그것마저 내기가 버겁단 말일세. 그래서 아파트를 팔 생각도 했었다네.”
“정말이요?”
“지금 정부에서 하는 꼬락서니 좀 보게. 집을 사고팔았다 하면 양도소득세다 취득세다 해서 세금 부과하려고 잔뜩 혈안이 돼 있는데 팔았다 하면 얼씨구나 양도소득세 때릴 거 아닌가.”
“저도 밀린 세금 내라고 자꾸 독촉장이 와서 골치가 아파요. 식당을 내놨는데 나가지를 않네요. 정부는 서민을 위한다. 소상공인을 위한다 말만 그럴듯하지 도무지 피부에 와 닿지를 않아요.”
“아까운 아파트 팔아서 여기저기 세금 떼고 나면 뭐가 남나, 그냥저냥 사는 거지.”
“그래서 팔지 않을 생각이신 모양이네요? 잘 생각하셨어요.”
“하는 수 없지. 대출받아서라도 세금을 내야지,”
“세금 내려고 대출을 받아요?”
“별 방법이 없지 않은가.”
“대출은 어떻게 갚으시게요?”
“대출금, 아파트값 올라가는데 그까짓 몇천이야 무슨 문제가 있겠나?.”
“생활비는 넉넉하신가 보네요.”
“그거야, 국민연금 조금 나오고 전에 벌어놓은 돈 찾아서 쓰고 그럭저럭 살고 있네.”
“그러시군요.”
“우리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 집어치우고 오랜만에 청계천에 가서 바람이나 좀 쐬다 갈까?”
“네. 그거 좋지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나이 많은 사내가 술값을 계산하고 청계천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전에는 악취가 심하고 판자촌이 즐비하던 곳이 말끔하게 정비되고 이제 팔뚝만 한 잉어가 올라올 정도로 수질이 좋아졌다. 맑은 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여유시간을 즐기는 젊은이들도 곳곳에 앉아있다.
“저쪽 좀 보게. 저들도 나처럼 10억대 거지야.”
나이 많은 사내가 가리키는 곳엔 늙수그레한 두 사람이 할 일 없이 서성거리고 있다.
“형님, 거지라고 하기엔 입성이 너무 고급스러워 보이는데요?”
나이 적은 사내가 그 사람들을 흘깃흘깃 쳐다보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개인택시 하던 사람들인데 아파트만 한 채씩 가지고 있어. 나처럼 재산세다 뭐다 해서 세금도 못 내는 작자들이지.”
“설마요?”
“정말일 거야. 내가 사는 아파트 팔면 모르면 몰라도 15억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걸세. 고향 같으면 큰돈이지. 논 백 마지기 정도 장만해서 편하게 살 수도 있겠지. 그것은 아파트 팔고 시골로 갔을 때의 일이고, 서울에 있으면서 판다는 것은 그저 앉은 자리에서 깃털 뽑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일세. 내가 살 아파트를 사려면 그만한 돈이 또 있어야 하지 않겠나?”
“형님 이야기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요. 나는 집 한 채 없으니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 하군, 고향에 땅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엄살은.”
두 사람의 발길은 자연스레 저만큼 떨어져 있던 같은 또래의 사내들 곁으로 다가갔다. 다가오는 사람들을 먼저 알아보고 일어선 사내가 아는 체를 한다.
“김형도 여기 나왔구려”
“집에 있기 답답해서요.”
“그래, 내놓은 아파트는 팔렸나요?”
“아니요. 팔지 않을 생각입니다.”
“왜요. 팔아서 시골 내려가고 싶다고 하더니?”
“그냥 두는 게 일해서 버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요. 하긴 재산세 낼 돈이 걱정이긴 하지만요.”
“하하하”
“결국, 10억대 거지로 남겠다는 말씀이구려?”
“아까운 내 깃털 뽑히느니 차라리 버티려고요.”
“하하하 잘하셨습니다. 우리 억대 거지끼리 자주 만납시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네 사내는 허허 웃으며 또다시 막걸릿집으로 향한다.

EDITOR AE류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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