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함께여서 참 좋았다
'글. 유병숙'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친구의 영정사진이 꽃에 둘러싸여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하늘나라로 떠나기 며칠 전 그녀가 전화를 했다. 반가운 나머지 요즘 왜 배드민턴 구장에 나오지 않느냐며 잔소리를 했다. 전화기를 타고 그녀의 웃음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그냥 바빠서…. 곧 나갈게. 우선 바람떡 한 말 보낼 터이니 나누어 먹어 한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겼어? 하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안부란다.
그녀는 긍정의 아이콘이었다. 시합에 지고도 방방 뛰며 웃던 그녀였다. 시합에 나간 것만으로도 신이 난다나? 나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 웃곤 했다. 우리는 비가 오면 온다고, 날씨가 좋으면 좋다고 끼들 대며 풍광 좋은 찻집을 찾아다녔다. 하루는 강가에 앉아 함께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문득 그녀가 말했다. 살아온 날 중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이렇게만 살다 가면 여한이 없겠다고…. 친구를 바라보았다. 노을빛 그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떡은 그녀의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그녀가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유족에게 물으니 갑자기 병색이 짙어지자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한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한편 원망스런 마음이 들었다. 생전에 인사라도 나누고 갔다면 슬픔이 덜했을까? 그건 차마 서로 못 할 일인 걸까. 그녀는 내가 보고 싶지 않았을까….
돌아가신 이문구 소설가의 일화가 떠올랐다. 마지막이라는 걸 직감한 그 분은 지인들에게 병원으로 면회 오라고 청했다. 지정해 준 시간에 맞추어 온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소천 하셨다 한다. 또한, TV 드라마 「서른, 아홉」에서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친구를 위해 생전 장례식을 열어주는 장면이 방영되기도 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 생애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가는 것,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장례식이었다.
버킷리스트가 담긴 노트를 폈다. 빼곡히 적힌 리스트 맨 끝자락에 나의 생전 장례식이라고 적어 넣고 메모해 내려갔다. 장소로 햇빛 가득한 야외를 상상해 본다. 가능하면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이는 곳이면 더욱 좋지 않을까?
우선 ‘함께여서 참 좋았다’는 제목으로 부고장을 보내자. 삶의 여정에 그대들이 있어 행복했다고. 밥 한 끼 먹으며 즐겁게 이야기나 나누자고, 환한 옷을 입고 오라고. 추억을 다지는 시간이 되길 희망한다고….





여기까지 적고 읽어보았다. 뜬금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삶과 죽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함께 걸어온 동지라고 했다. 허나 한 번 솟은 눈물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생전 장례식을 하겠다는 사람이 이리 마음이 약해서야 어찌할꼬. 슬픔을 지우는 방법은 없는 걸까?
문득 아내의 주검 앞에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물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는 장자가 떠올랐다. 장자의 말에 따르자면 모든 것이 혼돈 속에 뒤섞여 있는 중에 변화가 일어나 기(氣)가 생겼고, 그 기가 변화하여 형체를 이루었고, 다시 이 형체가 변화해서 생명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한 번 변화가 되풀이되어 죽음으로 돌아간 것뿐이다. 이는 계절의 순환과 마찬가지의 이치라 했다.

아마 내 아내는 지금쯤 천지(天地)라고 하는 한 칸의 큰 거실 안에서 단잠을 자고 있을 걸세. 그런데도 내가 소리를 치고 통곡하며 운다면, 천지간에 얼마나 불행한 사람이 되겠는가?”

장자는 “우주의 원리에 동참한 아내를 생각하자 노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장자의 물동이를 생전에 두들겨 보는 건 어떨까? ‘걸판지게 놀며 환하게 웃는 시간 되려 하니 축제장 오듯 가볍게 날아오시라.’ 문구를 써넣는다.
식장에는 ‘나의 쌩쌩 신나는 장례식’이라고 쓴 현수막을 걸자. 나는 무지갯빛 옷을 걸치고 조문객들에게 빨간 장미꽃을 나누어 주리라.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그간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리라.
행사가 시작되면 우선 아들과 교류하고 있는 힙합 가수들을 초청해 무대를 경쾌하게 띄워보자. 연주 활동을 하는 조카딸에게 피아노 왈츠곡을 부탁해도 좋겠다. 노래 잘 하는 이에게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청해 듣고 싶다. 조문객들 누구라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노래 부르고 춤추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 흥이 오르면 노래는 합창이 되리라. 나도 못 하는 노래일망정 한 곡조 뽑아야 하지 않을까? 라인 댄스에 열심인 아우들에게도 무대를 내어줘야지…. 바다를 배경으로 앞다투어 노래 부르는 광경, 춤추는 장면들을 떠올려본다. 문득 가수 임영웅이 떠오른다. 팬 심을 일으킨 그를 초대할 수 있다면….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진다.
돌아가는 조문객들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우리는 마치 내일 다시 만날 듯 가볍게 작별 인사를 나누리라. 행사를 담은 사진들은 SNS로 전송해주어야지…. 그날의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달콤한 잠에 빠져 들게 되길!
여기까지 쓰다 문득 펜을 멈춘다. 갑작스레 부음을 접하면서도 죽음은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한데 벌써 이렇게 버킷리스트로 남길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계획대로 생전 장례식이 열리기 어려운 상황이 될지도 알 수 없다. 보고 싶었던 사람이 오지 못할 상황에 놓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루하루 무럭무럭 늙어가고 있다. 옛 어르신들은 살아생전 당신의 산소 자리를 미리 보아두고, 윤년이 오면 수의도 장만하지 않았던가. 펜데믹 사태를 겪은 후 장례 풍속도 바뀌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안부’라던 친구의 말이 가슴을 아프게 두드렸다. 생전 장례식은 내 생의 마지막 행사가 될 것이다. 우물쭈물하다 천편일률적인 장례식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다.
해인사 기둥에 연이어 걸어놓은 글 판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時), 곧 지금 사는 이 순간, 이곳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나누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겠다. 그대들 덕분에 외롭지 않다고, 행복하다고, 사랑한다고…. ‘쌩쌩 신나는 나의 생전 장례식’ 현수막이 걸리는 날까지 나는 즐겁게 나의 버킷리스트들을 지우며 살아가리라.

EDITOR 편집팀
유병숙 작가
이메일 : freshybs@hanmail.net
『책과 인생』 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명예회장
한국문인협회,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
한국산문문학상,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2회 수상
제12회 한국문학백년상 수상
『충청매일』에 에세이 연재
『조선일보』에 에세이 게재
수필집 『그분이라면 생각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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