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수필] 매미가 운다
'글. 유병숙'

열대야에 뒤척이다 무언가 아우성치는 소리에 퍼뜩 잠이 깬다. 시계는 새벽 3시를 향해가고 있다. 활짝 열린 창문을 내다본다. 머리맡을 흔들어대던 소리는 매미의 그악스러운 떼창이었다.
한숨이 올라온다. 다시 잠들기란 틀린 일이다. 어린 시절 자연의 멜로디로 들렸던 매미의 노랫소리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유난히 환하게 느껴지는 가로등이 원망스럽다. 분명 저 불빛이 매미를 자극했으리라. 따지고 보면 인조 태양이 녀석들을 과노동으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매미 입장에서 보면 나의 짜증은 적반하장 격이다. 사고가 났는지 여러 대의 앰뷸런스가 아스팔트를 무두질하듯 요란스럽게 지나간다. 순간 매미의 울음소리도 강파르게 날카로워진다. 문명에 맞추어 매미의 울음도 발 빠르게 진화하는 중이리라.





두루 알다시피 매미들이 목 놓아 우는 까닭은 오로지 하나, 짝짓기를 위해서이다. 밤낮의 경계를 넘어선 저들의 종족 보존의 본능이 처절하게 다가온다. 수컷 매미의 공명이 점점 드높아진다. 울음의 시작과 종착은 오로지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암매미를 향하고 있다. 어느 사내가 저리도 애타게 구애할 수 있으랴! 우리네 삶으로 빗대어 본다면 시샘과 부러움을 불러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화한 녀석들의 생은 길어야 겨우 한 달 남짓의 시한부이다. 긴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겨우 비상했건만, 남은 생의 전부를 걸고 저렇듯 애절하게 세레나데를 불러야 하는 숙명이 애달프다. 수컷은 짝짓기 이후, 암컷은 알을 낳은 후 바로 탈색된 모습으로 생을 마친다. 그들의 여로가 애절하다. 자신을 하얗게 불사르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게 사랑이라는 걸 매미는 알고 있는 것이다.

모래내 천변 오동가지에// 맞댄 두 꽁무니를/ 포갠 두 날개로 가리고/ 사랑을 나누는 저녁 매미// 단 하루/ 단 한 사람/ 단 한 번의 인생을 용서하며/ 제 노래에 제 귀가 타들어 가며// 벗은 옷자락을 걸어놓은/ 팔월도 저문 그믐/ 멀리 북북서진의 천둥소리
-정끝별 시「처서」 전문

어쩌면 저 매미 부부처럼 우리도 오로지 사랑 하나 세상에 남기고자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매미의 사나운 열정에 깃든 속내를 들여다보다 문득 우리네 섧은 사랑의 사연들을 떠올려본다. 얼마나 많은 연인이 열정과 냉정을 견디며 애를 끓였던가. 더구나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또 어떠할까? 「사의 찬미」를 남기고 간 윤심덕의 사연이 새삼 심금을 울린다. 기억에 남는 건 잊지 못할 한순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짧은 생이라 해서 애달아할 일도 아닌 듯하다.





매미가 저렇듯 절절하게 울어대도 짝을 만날 확률은 5할을 넘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대다수의 매미가 미처 짝을 찾지 못한 채 소멸하고 마는 것이다. 매미 울음 속에서 우리네 장가 못 간 농촌 총각들의 애환이 떠올려진다. 나라 안에서 신붓감을 찾지 못한 그들은 저 멀리 베트남, 캄보디아, 티베트,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짝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이런 사연을 접할 때마다 오늘날의 인간사가 한갓 미물의 운명과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매미의 울음에 피멍이 핀 것처럼 짠하게 다가온다. 이런저런 생각에 젖다 보니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는 매미를 향한 미움이 걷히고 까닭 없이 연민의 감정이 밀려온다. 여름 한철 혼신을 다해 울고 갈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 본다.
달아오른 번철처럼 한참을 뜨겁게 울어대던 매미들이 약속이나 한 듯 울음을 뚝, 멈춘다. 일순 찾아온 고요가 우물처럼 깊게 느껴진다.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나도 숨을 죽인다. 그들에게도 모종의 룰이 있어, 숨 막히는 경쟁을 일시에 멈추고 잠시 쉬자는 걸까? 울음과 울음 사이 그 막간이 반칙을 일삼는 인간에게 일침을 가한다. 마침내 고요의 물결을 깨고 한 마리의 매미가 선창하자 화답하듯 일시에 예의 소란스런 떼창이 이어진다. 매미들의 울음을 교향악으로 바꾸어 들으며 애써 꿀잠을 청해 본다.

EDITOR 편집팀
유병숙 작가
이메일 : freshybs@hanmail.net
『책과 인생』 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명예회장
한국문인협회,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
한국산문문학상,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2회 수상
제12회 한국문학백년상 수상
『충청매일』에 에세이 연재
『조선일보』에 에세이 게재
수필집 『그분이라면 생각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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