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다음세대 기록활동]
직지의 산실 흥덕사지 이야기 4부
'다시 찾은 보물 - 청주의 문화유산'

‘다시찾은보물’은 2023 청주 문화도시조성사업 [다음세대 기록활동]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시리즈로 청주의 문화자원을 6개 테마로 구분하여 글, 그림, 사진으로 엮은 책입니다. 문화유산, 역사인물, 숲길산길, 예술인, 교육유산, 미래유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 편에서는 ‘1권: 문화유산’을 게재합니다.
Cheapter2-4. 직지의 산실 흥덕사지 이야기
한편, 흥덕사지가 확인되자 한국토지개발공사 충북지사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택지개발을 하던 중에 난데없이 절터를 발굴하여야 한다고 하여 공사를 중지하고 발굴비용까지 대줬더니 이제는 보존하여야 한다고 하니 회사에서는 황당하고도 난감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흥덕사지와 『직지』가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청주가 인쇄문화의 메카로 크게 주목받게 되었으니 보존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1만여 평을 사적지로 보존하였다가 일종의 여론몰이도 작용하여 후에 면적이 두 배로 늘어났다.
흥덕사지는 발굴조사 이후 철조망으로 둘러친 채로 한동안 방치되었다. 보존정비와 박물관 건립이 넉넉하지 못한 지방재정으로는 바로 추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기적 같은 일이 또 일어났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부고속전철 건설을 계획하고 고속철도 선진국들과 접촉하고 있을 때인데 가장 적극적이었던 나라가 프랑스였다. 프랑스 떼제베의 기술도입을 위해 전두환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하였고,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엘리제궁에서 한국 대통령을 맞이하면서 깜짝쇼 하듯이 『직지』 원본과 신라 혜초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을 보여주었다. 이 뉴스를 국내에서 접한 관계 당국은 초비상이 걸렸다. 다음날 이원홍 문화공보부 장관과 김원룡 문화재위원장이 청주에 내려와 현장을 둘러보았고, 노건일 충북지사도 여러 차례 흥덕사지와 출토유물이 보관된 청주대학교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외국 대통령의 외교적 특별배려로 『직지』를 친히 열람한 대통령의 귀국 후에 특별지원금이 내려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60억 원이 내려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덕에 흥덕사지 정비와 고인쇄박물관 건립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흥덕사지 발굴 후에 인근에 세워진 초등학교 이름은 나의 제안으로 연당초등학교로 정해졌다가 흥덕사지로 확인된 후 흥덕초등학교로 다시 제안하여 그대로 확정되었고, 1995년 청주시 인구가 50만을 넘어 2개의 구가 생길 때, 무심천 서쪽의 구청 명칭을 흥덕구라 하는 등 각종 명칭에 사용되고 있다. 『직지』는 흥덕사지의 발굴을 통해 재탄생함으로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고, 인쇄출판박람회와 직지코리아국제페스티벌 등 청주의 대표적인 문화콘텐츠로 자리하게 되었다.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까지의 과정에도 숨겨진 일화가 있다. 모든 유산은 소재하거나 소유한 나라에서 등재 신청을 하여 심사 과정을 밟게 마련이다. 『직지』는 1985년 흥덕사지 발굴을 통해 청주의 문화 아이콘으로 등장했지만, 『직지』는 여전히 프랑스가 소유하고 있다. 청주의 시민단체에서 반환 운동을 펼치기도 했으나 실현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다. 청주시는 어떻게든 『직지』를 통해 지역을 알리고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소식이 들렸다. 유네스코에서 세계기록유산 사업을 시작하였고 한국의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의 등재가 확정된 것이다. 청주시는 곧바로 『직지』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였다. 『직지』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판단하고 1998년 9월 2일 유네스코한국위원회를 통해 유네스코 본부에 등재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이를 회의에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이유는 『직지』를 인쇄한 나라는 한국이지만 현재 보관하고 있는 프랑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유네스코는 프랑스와 공동으로 신청할 것을 권유하였다. 하지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보낸 회신 내용은 등재 신청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청주시는 포기하지 않고 전략을 바꾸기로 하였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를 청주에 유치해서 어떻게든 등재될 수 있도록 추진하였다. 이에 청주시는 관계자로 구성된 대표단을 1999년 6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개최되는 제4차 회의에 파견해 자문위원들에게 『직지』를 홍보하고 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하는 한편, 제5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회의의 청주 유치도 신청하였다. 당시 청주는 여러 가지로 불리했다고 한다. 우선 청주 대표단은 단지 옵저버 자격이었는데 자문위원으로 참석한 멕시코 대표가 다음 회의를 자국으로 유치하려고 하였고, 청주는 수도가 아닌 지방 도시인 것도 문제가 되었다. 어떤 나라도 지방 도시에서 회의를 개최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마침내 2001년 6월에 제5차 회의가 청주에서 개최되었고 프랑스는 등재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여 분위기가 좋아지는 듯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의 중앙정부에서 제동을 걸었다. 그해에 함께 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승정원일기』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직지』는 안건으로 상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참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직지』와 『승정원일기』 모두 신청하여 같은 해 9월 4일 등재가 확정되었다. 청주에서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이 일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한 사람은 나기정 시장이었다.

흥덕사지의 현재모습



1984년 11월 29일 택지개발공사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름 없는 절터를 찾아낸 것을 시작으로 1985년 10월 8일 글씨가 새겨진 청동 금구를 통해 흥덕사 터를 확인함으로써 『직지』는 청주에서 기적처럼 부활하였고, 2001년 9월 4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됨으로써 『직지』는 세계의 유산으로 재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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